지난주 1주일간 독일 하노버에서 세계 최대 산업기술 박람회 ‘하노버 메세 2025’가 열렸다. 미국 CES와 함께 세계 양대 기술 전시회인 이 박람회는 올해 전시업체 4000여 개, 관람객 12만700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산업 인공지능(AI) 대전환(AX)이 단연 핵심 화두가 된 올해 하노버 메세는 우리 산업에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남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계 AI 및 클라우드 분야를 선도하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AWS) 등 미국의 빅테크가 지멘스, SAP 등 유럽의 제조 솔루션 기업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때 세계 제조 최강국이던 미국은 1990년대 후반 ‘신(新)경제’ 전략으로 제조 기반을 중국 등 아시아로 이전하며 제조업 공동화를 야기한 것이 오늘날 미국의 세계 패권이 중국에 위협받는 화근이 됐다. 세계 제조업 생산 비중에서 미국은 16%로 31%의 중국에 뒤진 지 오래다. 결과적으로 세계 최고의 AI 및 클라우드 역량을 갖고도 중요한 산업 데이터 및 도메인(분야) 노하우가 부족해 산업 AX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미국 빅테크와 유럽의 제조 솔루션 기업이 협업하는 사례가 주류를 이룬 배경이다. 비유하자면 미국은 짜장면 그릇은 잘 만드는데 담을 짜장면이 시원치 않고 유럽은 그 반대인 셈이다. 협업 속에서도 서로의 속내는 오월동주처럼 달라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산업 AX는 성격상 다른 분야 AX 대비 AI 모델보다 산업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가 더욱 중요하다. 이 측면에서 유리한 제조강국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이 디지털 주권 사수의 기치를 걸고 매뉴팩처링-X로 불리는 데이터 공유 생태계 구축에 전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딥시크 사태와 같이 AI 보편화 및 민주화가 전개되는 상황에서 유럽이 데이터 생태계 전략에 성공하면 제조업 등 세계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할 것이다. 이 유럽의 노림수는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명운은 AI 세계 3강 도약에 달려 있고, 이는 세계 최강의 산업 AX 역량이 필수적이다. 올해 하노버 메세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유럽보다 잘할 수 있는 산업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 생태계를 시급히 구축하는 것이다. 민관이 협력해 국가적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우리 미래 먹거리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기계, 로봇, 바이오 등 첨단 제조업이 최우선 대상이다. 제조 데이터의 구조화 및 표준화가 중요하다. 무작정 데이터를 모으기보다 산업 AX의 궁극적 목적인 생산성·품질·원가 경쟁력은 물론 탄소중립 등 지속 가능성 확보에 직접 관계되는 데이터에 집중해야 한다. 산업별 데이터 생태계 구축은 우리 AI 전략이 될 산업별 특화 AX의 첩경이다.
산업별 도메인 노하우를 포함하는 광의의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중요하다. 데이터 표준화는 기업 개별적으로는 추진이 어렵다. 기업의 데이터 표준화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세제, 연구개발(R&D), 금융 혜택 등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 활용을 위해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재산인 데이터의 제값 거래와 함께 데이터 공개 없이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연합학습 기법 등의 확산도 추진해야 한다. 독일 미국 일본 등과의 국제 협력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지정학적 이점도 기대할 수 있다. 지금이 절호의 시기다. 위기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