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326명 살린 ‘일본의 쉰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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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9월 1일, 일본 사가미만 일대에서 규모 7.9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약 7분간 이어진 흔들림에 도쿄와 요코하마 등 간토(關東) 일대가 폐허로 변했습니다. 빽빽한 목조 건물에 불이 붙으며 거대한 화재가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혼조(本所) 육군 피복창 터로 피신한 사람 가운데 약 3만8000명이 불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행방불명자를 포함한 사망자는 10만 명이 넘었습니다. 무너지거나 불탄 건물도 10만 채를 웃돌았습니다. 일본 근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재난 가운데 하나인 ‘간토(관동)대지진’입니다. 땅의 흔들림이 멎자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혼란을 틈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약탈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졌습니다. 공포에 휩싸인 일본인들은 일본도와 죽창, 총으로 무장한 자경단을 꾸렸습니다. 군과 경찰도 학살에 가담하거나 이를 방조했습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아무 죄도 없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희생자를 233명으로 집계했습니다. 반면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파악한 희생자는 6661명에 달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정확한 피해 규모는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요코하마 쓰루미 경찰서장이던 오카와 쓰네키치(1877∼1940·사진)는 집단적 광기에 맞섰습니다. 그는 자경단에 쫓기던 이들을 경찰서 안으로 피신시켰습니다. 조선인 326명과 중국인 70명이었습니다. 무장한 군중은 경찰서를 에워싸고 조선인들을 내놓으라고 위협했습니다. 오카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조선인과 중국인의 소지품에서 무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조선인이 폭동과 약탈을 벌였다는 말은 근거 없는 거짓이라고 군중을 설득했습니다. 성난 군중 앞에서 오카와는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맞섰습니다. 마침내 군중이 물러나자 오카와는 보호하던 이들을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안전한 배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그의 보호를 받은 사람들은 한 명도 희생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훗날 재일 조선인들은 요코하마 도젠지(東漸寺)에 감사비(1953년)를 세웠습니다. 그 비석에 오카와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관동대지진은 자연이 일으킨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인 학살은 인간이 만든 지옥이었습니다. 오카와는 그 지옥 한가운데서 약자의 생명을 지켰습니다. 세상이 광기에 휩쓸릴 때도 끝내 ‘사람’으로 남은 ‘일본의 쉰들러’였습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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