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원래 건축가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화가를 꿈꿨지만, 자신을 길러준 큰아버지의 뜻에 따라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진학했습니다. 수석으로 졸업한 뒤 조선총독부 건축 기사로 일했지만 안정된 직업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건축 도면을 그리고 밤에는 시와 소설을 쓰며, 기술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를 하나의 창작 안에서 융합해 나갔습니다.
193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장편소설 ‘12월 12일’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이상은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등 당대 대표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학 세계를 넓혀 갔습니다. 1934년에는 순수 문학 동인인 구인회에 참여하며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의 재능은 그림에서도 나타났습니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양화가로 입선했고,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삽화를 비롯해 자신의 대표작 ‘날개’의 표지도 직접 그렸습니다. 건축을 통해 익힌 공간 감각과 미술에서 길러진 시각적 구성 능력은 그의 작품 속에서 독창적인 문학 언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연작시 ‘오감도’는 당시 문단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숫자와 기호를 활용한 실험적인 형식, 기존 시의 문법을 과감히 깨뜨린 표현은 독자들에게 낯설고 난해하게 받아들여졌고, 결국 연재는 15회 만에 중단됐습니다. 그러나 훗날 ‘오감도’는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됐습니다. 이어 발표한 소설 ‘날개’ 역시 기존 소설 문법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한국 문단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상은 폐결핵으로 스물여섯이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오늘날 교육은 암기보다 연결을, 지식의 축적보다 새로운 창조를 강조합니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융복합형 인재, 어쩌면 90여 년 전 이미 ‘이상’이라는 이름 속에 담겨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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