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맞은편 건물엔 새빨간 배경의 매장 간판이 걸려 있다. 이름은 ‘본투스탠드아웃(BORNTOSTANDOUT)’. 내부 공간은 매장 간판보다 더 도발적이다. 천장과 벽은 온통 빨간색으로 뒤덮여 있고,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린 거대한 조형물이 한편에 놓여 있다. 매장 곳곳에 놓인 흰 달항아리과 붉은색 공간이 묘한 ‘역설미’를 자아낸다.
공간만큼이나 파격적인 건 매대에 놓인 향수다. 백자를 닮은 향수병을 하나하나 열어보면 구수하고 향긋한 쌀밥 냄새(더티라이스), 진흙 속에 처박힌 듯한 초콜릿 향(머드), 오묘한 고무 냄새(더티헤븐), 구릿하면서도 달콤한 쿠키 향(비 마이 쿠키) 등 생소한 향이 후각을 사로잡는다.
본투스탠드아웃은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2년 임효준 대표(34)가 세웠다. 출범 3년 만에 60여 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영국 런던 해러즈, 프랑스 파리 사마리텐 등 대기업도 뚫기 힘든 유럽의 대표 명품 백화점에 입점했고, 최근엔 세계 1위 뷰티기업 로레알그룹의 투자도 받았다. 2일엔 신세계면세점에도 입점한다.
세계적인 K뷰티 신드롬이 향수로 확장되고 있는 지금, 본투스탠드아웃은 한국 브랜드사에 어떤 이정표를 남길 수 있을까. 임 대표를 지난달 15일 한남동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만났다.
‘향수 덕후’가 만든 반항적 향수
▷매장이 상당히 파격적이네요.
“본투스탠드아웃이란 이름에 걸맞은 공간이죠. 처음 브랜드를 만들 때 한국적인 요소를 넣으면서도 거기에 반항하고 싶었어요. 한국은 진취적이긴 하지만 어쩌면 가장 보수적인 나라이기도 하잖아요. 한국의 상징인 백자를 활용하면서도 도발적인 붉은색으로 반항의 메시지를 담았죠. 저희 향수도 마찬가지예요. 흔히 맡을 수 없는 향을 통해 고정관념과 사회적 틀을 깨죠.”
▷창업 전 경력이 화려하네요.
“사회생활은 회계사로 시작했고, 유명 외국계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도 일했어요. 그러다 직장에서 해고됐는데, 그때 제가 가장 좋아하던 것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게 바로 향수였어요. 10대 때부터 향수를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베르사체의 ‘블루 진’이 시작이었죠. 10달러 조금 넘는 싸구려 향수였는데, 향수란 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려준 제품이었죠. 그 후로 마치 예술품을 모으듯 조말론, 크리드 같은 니치 향수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돈을 벌고 난 후엔 어렸을 때 비싸서 못 산 세르주루텐을 가장 먼저 샀어요.”
▷‘향수 덕후’군요.
“네. 어렸을 때 미국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향수 마니아 커뮤니티가 잘 발달해 있어요. 매일같이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향수를 공부하고, 관련 포럼에 찾아가 향수 샘플을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그곳에선 빈티지 향수를 예술품처럼 웃돈을 주고 거래하거나 심지어 빈 병도 비싼 값에 팔기도 해요. 그렇게 20년간 모은 향수가 1000가지가 훌쩍 넘죠.”
▷그래서인지 향이 독특해요.
“쉬운 향을 지향하진 않아요. 호불호가 갈리고, 실험적이고, 예술적이라고 느낄 만한 향을 만들죠. 일반적인 브랜드는 호불호 없는 향을 만들기 위해 시트러스, 플로럴, 우디, 허벌 등 보편적인 향을 많이 쓰는데, 본투스탠드아웃은 거기서 벗어나 있어요. 틀을 깨고 우리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아티스틱 퍼퓸’이 지향점이죠.”
200통의 콜드메일이 뚫은 길
▷향수 가격대가 상당히 높아요.
“50mL에 26만원, 100mL에 36만원이에요. 바이레도, 르라보 등 익히 알려진 브랜드보다 비싸죠. 그래서 저희가 자주 듣는 질문이 ‘너네는 왜 이렇게 비싸?’예요. 해외에서 한국 상품의 이미지는 ‘적당한 품질, 적당한 가격’이거든요. 고가의 럭셔리와는 거리가 멀죠. 저희는 이런 점에서 일반 K뷰티와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외 유통망을 뚫었나요.
“럭키센트라는 향수 판매 플랫폼을 먼저 공략했어요. 소위 ‘향수 덕후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죠. 브랜드가 자리 잡으려면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야 하거든요. 그래서 매일같이 럭키센트 본사에 콜드메일(사전 접촉 없이 보내는 이메일)을 보냈어요. 우리 브랜드 좀 한 번 만나달라고.”
▷답장이 왔나요.
“당연히 안 왔죠. 하지만 100~200통은 보냈으니 한 번쯤은 눈여겨보지 않았을까 했어요. 최악은 ‘노(no)’잖아요. 아무런 답장이 없다는 건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그러다 코로나19 상황이 풀리자마자 무작정 럭키센트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본사로 날아갔어요.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했죠. 한국에서 왔고, 만나줄 때까지 안 돌아가겠다고.”
▷반응이 어떻던가요.
“대표가 나와서 ‘당신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많은 메일을 보낸 게 인상적이었다고. 이틀 뒤 미팅하자고 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그로부터 두 달 뒤 럭키센트에 입점했어요. 그때부터 마니아 사이에서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죠. 그걸 기점으로 유럽 온라인 플랫폼에도 입점했고 오프라인 유통업체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죠.”
“호불호 강한 브랜드가 목표”
▷지금은 어느 곳에 진출해 있나요.
“그동안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을 비롯해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등 63개국에 진출했어요. 원칙은 하나, 국가별로 가장 럭셔리한 채널에 들어가는 겁니다. 예컨대 영국에선 해러즈와 셀프리지 백화점에 입점했고 프랑스에선 사마리텐, 쁘렝땅, 갤러리라파예트 등에 들어갔죠. 작년 매출의 3분의 2 이상이 해외에서 나왔어요.”
▷럭셔리 채널만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요.
“브랜드를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매출을 키우고 싶다는 유혹을 느낍니다. 단기간에 매출을 늘리기 위해 유통 채널을 무분별하게 늘린다면 그만큼 희소성은 반감되고 브랜드 매력과 파워도 줄어들죠. 소수 채널에 선별적으로 들어가는 건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예술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로레알 투자는 어떻게 받았나요.
“회계사 출신인 제가 깜짝 놀랄 정도로 로레알이 2년간 꼼꼼히 실사하더라고요. 니콜라스 이에로니무스 로레알 최고경영자(CEO)가 매장을 방문해 제품을 경험해보기도 했죠. 로레알 투자를 기반으로 올해 파리와 이탈리아 밀라노, 내년엔 미국 뉴욕과 LA에 단독 매장을 낼 계획이에요. 올해 매출 500억원, 5년 뒤 2000억원을 달성할 겁니다.”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나요.
“호불호가 강한 브랜드요. 통상 브랜드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상품을 통해 고객층이 넓어지길 원하죠. 하지만 본투스탠드아웃에선 꼭 좋아하는 향을 찾지 못해도 괜찮아요. 싫어하는 향이라도 발견한다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스쳐 지나가는 제품이 아니라 뇌리에 남았다는 거니까. 누구에게나 싫은 소리를 듣지 않는 ‘예쁜 브랜드’가 아니라 도발과 반항의 메시지를 향으로 풀어내는 브랜드, 그게 바로 본투스탠드아웃입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