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1% 예술 제도 뒤에 숨은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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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1% 예술 제도 뒤에 숨은 과제들

거리의 조형물과 광장의 구조, 조명이 비추는 방식은 그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말없이 전한다. 서울 광화문광장은 오랫동안 기억의 공간이었다. 각각 2009년, 1968년에 세워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은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이자 공공조형물 논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2022년 광화문광장은 대대적인 재구성을 거쳐 ‘기념’에서 ‘참여’로, ‘위엄’에서 ‘일상’으로 거듭났다. 도시의 가장 중심에서 이뤄진 이 변화는 공공미술이 단지 눈에 보이는 동상이 아니라 사유와 움직임을 촉진하는 ‘공적 장소’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1% 예술 제도’가 자리하고 있다. 1951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모든 공공건축 공사비의 1%를 예술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한국도 1995년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건축물에는 미술 장식을 의무화했고, 이를 통해 수많은 조형물이 도시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 법 제9조 조항에 따라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건축물은 전체 공사비의 약 1%를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해야 하며, 설치를 원하지 않으면 기금 출연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는 예술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보장하겠다는 선언으로, 도시의 질서와 감성을 동시에 설계하려는 제도적 실험이다.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망치질하는 거대한 조각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조각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작품 ‘해머링 맨(Hammering man)’이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하절기에는 7시)까지, 35초에 한 번씩 망치질하는 키 22m에 몸무게가 50t인 철제 거인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마다의 망치를 들고 성실하게 일하는 근로자를 형상화해 삶과 노동의 숭고함과 보람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1% 예술 제도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작가 선정의 불투명성, 조형물 유지·관리 미흡 등 제도의 공공성과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제도의 실효성에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청계천의 ‘스프링(Spring)’은 그 논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작가 코셰 반 브루겐과 클라스 올덴버그가 공동 제작한 높이 20m의 다슬기를 형상화한 이 나선형 작품은 청계천 복원의 상징으로 기획했다. 하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맥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외래 조형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지역 예술 생태계와의 단절, 외국 작가 선정의 타당성 문제는 공공미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보존 역시 중요한 과제다. 프랑스의 에펠탑은 7년마다 약 60t의 페인트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도장을 새로 한다. 단순한 외형 관리가 아니라 구조물 자체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한 작업이다. 색상 또한 하단에서 상단으로 갈수록 세 가지 그러데이션을 두어 하늘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1% 예술이라는 제도적 장치는 예술을 도시 속에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단지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억을 나누고 관계를 형성하며 도시의 감정을 수집하는 행위까지 나아가야 한다. 광화문광장은 이제 기념비를 바라보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걸으며 기억을 재구성하는 장소가 됐다. 도시의 예술은 멈춘 풍경이 아니라 시민들의 발걸음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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