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아치울 서재에서 만난 박완서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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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아치울 서재에서 만난 박완서의 일상

“엎드려서 글을 쓰다가 밥상을 놓고 글을 쓰니 이렇게 좋은 것을, 하고 좋아하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이젠 버젓하게 큰 책상에다 의자에 앉아서 쓴다.”

가족을 돌보다가 틈틈이 방에 엎드려 쓴 소설 <나목>으로 등단한 작가 박완서. 마흔의 작가가 자기만의 책상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였다. 최근 서울대 헤리티지 라이브러리에 조성된 박완서 아카이브 기념전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에서 그 책상을 만났다.

‘아치울 서재’라고도 불리는 이 공간은 작가가 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낸 경기 구리시 아치울 ‘노란집’의 서재를 재현한 곳이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는 희귀해진 백과사전을 비롯한 여러 장서가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책장 옆에는 작가가 타계할 때까지 한 번도 바꾸지 않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책상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이 탄생했다.

서재 옆에는 ‘생각만으로 비죽비죽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그에게 큰 위안이 되던 아치울 정원이 펼쳐져 있다.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커다란 살구나무가 정원을 채우고 나무 아래 뜰에는 아이비, 고사리 등 갖가지 식물이 심겨 있다. 그럴듯하게 흉내 낸 조화가 아니다. 싱싱하게 숨 쉬는 식물이다. 아파트 생활로 숨 막히던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평안을 준 곳인 만큼 공들여 재현하고 있다.

노년에 얻은 마당은 유년의 뜰을 닮아갔다. 직접 호미를 들고 식물을 가꾸며 흙을 주무르는 일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호미로 김을 매듯, 작가는 성실하게 작품세계를 가꿨다. 1970년 등단한 이후 2011년 타계할 때까지 40년 동안 쉬지 않고 작품활동을 했다. 장편 15편과 9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비롯해 산문과 동화, 콩트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작품세계를 남겼다.

“내 상처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이상 그 피로 뭔가를 써야 할 것 같다. 상처가 아물까 봐 일삼아 쥐어뜯어 가면서라도 뭔가를 쓸 수 있는 싱싱한 피를 흐르게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건 내 개인적인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참히 토막 난 상처이기 때문이다.”

쓰기 위해 상처를 아물게 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피 흘리게 하는 그 무서운 집념이 40년 문학 여정을 이룬 바탕일까. 그의 작품을 읽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작품에 영혼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 지낸 시절을 뒤로하고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증언한다.

전시의 백미는 그의 내밀한 일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품이다. 육필 원고자료, 사진, 편지, 손길이 묻어 있는 재봉틀 등 생활사 자료에서 ‘인간 박완서’를 만난다. 원고를 쓰고 살구잼을 만드는 그의 모습을 일기에서 본다. 글을 쓰면서 반찬을 만든다. 글쓰기의 리듬이 곧 생활의 리듬이었다. 글쓰기와 살림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하며 서로를 돌봤다. 작가에게 머리를 쉬는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쓰기로 인한 긴장을 몸을 움직이는 살림으로 풀고, 일상에서 얻은 활력을 작품의 동력으로 삼았다.

전시 제목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은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의 부제다.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며 각자의 선물을 준비하는 이야기처럼 작가의 15주기를 맞이한 올해, 박완서 아카이브가 선물처럼 찾아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그의 문장이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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