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가장 비운의 음악가는 조르주 비제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반년 정도만 더 살았더라면 자신의 엄청난 성공을 직접 목격했을 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다.
1875년 오페라 ‘카르멘’이 초연됐을 당시 비제는 거센 비난까지 받았다. 당시 위험한 계층으로 기피되던 집시 여인, 그것도 성적으로 자율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살인까지 다룬 이야기는 가볍고 건전한 오페라를 기대하던 관객에게 큰 충격이었다. 여기에 스페인풍 리듬과 이국적인 선율까지 더해지면서 작품은 당시 기준으로는 너무도 낯설고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공연에 대한 냉담한 반응을 마주한 비제는 “절망적이고 확실한 실패작”이라며 앓아누웠고, 초연 석 달 뒤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상황은 급변했다.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을 “모든 면에서 걸작”이라고 극찬했고, 브람스는 ‘카르멘’의 작곡자를 부둥켜안을 수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가겠다고 말했을 정도다. 니체는 이 작품을 스무 번째 봤다며 “비제의 음악은 내게 완벽한 것으로 보인다”는 찬사를 남겼다.
후대의 찬사를 알지 못한 채 떠남으로써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놓쳤다는 것. 그것이 내가 비제의 삶을 실패로 단정하고 안타깝게 여긴 이유다. 그런데 불운한 존재들에게 묘하게 마음이 쏠리는 버릇을 핑계로 그의 음악을 찾아 듣고 관련 자료를 뒤적이다가 나를 뜨끔하게 하는 문장과 마주쳤다.
올해 1월 비제의 솔로 피아노 작품 전곡 앨범을 발매한 피아니스트 로베르토 프로세다의 인터뷰다. 그는 “음악가로서 정의하는 성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탈리아어로 성공은 ‘일어난 일’이라는 의미라고 답했다. 잊힌 음악을 발굴하고 알리는 데서 기쁨을 발견한다는 그는 결과적인 성취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하는 과정’에서 완벽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살아오는 동안 무엇을 사랑하는지는 분명하게 알아차려 왔다. 다만 그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 지금껏 사랑하는 것들이 내 안에서 스스로 빛바랜 이유도 그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일까?
작은 꼬마였던 시절, 피아노 뚜껑이 열리면 훅 풍겨오는 습기 찬 나무 냄새와 영롱하게 빛나는 희고 검은 건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당연히 피아니스트가 되면 평생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공을 해보려 레슨을 거듭 받을수록 피아노 치는 게 지루해졌다.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선생님이 요구하는 대로 다이내믹을 조절하고, 좋아하는 구간은 제쳐두고 손가락이 유독 엉키는 부분만 반복해 연습하는 동안 내 사랑에 불순물이 끼어들었다.
피아니스트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를 돌파하지 못한 의지의 부족이 가장 컸겠지만,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명확하다. 문득 ‘타인의 인정이나 성취가 행복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문장을 머리로만 외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비제의 삶을 바라보던 내 방식도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카르멘’ 실패에 비제는 괴로웠다. 그러나 그는 통념에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뭔가를 좋아했고, 사랑하는 것을 발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바꾸기 위해 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끝내 세상에 없던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알아차리는 데만도 긴 시간을 쓰는 이들이 부지기수인데 말이다. 그러니 비제를 단순히 ‘비운의 음악가’로만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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