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최고 매력남’에게 외모란… 정치적 자산이자 무지 잊게 한 덫[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5 days ago 7

〈100〉 아름다운 사람의 비극
정치인에게 외모는 주요 자질
대중 지지 얻는 데 큰 역할 하나… 곧 정치적 성공 보장하진 않아
외모-인기로 야망 키운 제자에… 소크라테스 “외모 덧없는 것”
자만→오류 부정→패가망신뿐

소크라테스 제자이자 아테네 최고의 매력남으로 묘사되는 알키비아데스는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됐다. 장바티스트 르노가 그린 ‘감각적 쾌락에서 알키비아데스를 끌어내는 소크라테스’(1791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소크라테스 제자이자 아테네 최고의 매력남으로 묘사되는 알키비아데스는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됐다. 장바티스트 르노가 그린 ‘감각적 쾌락에서 알키비아데스를 끌어내는 소크라테스’(1791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역사가들은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로 외모를 꼽았다. 정치에 왜 영업의 요소가 없겠는가.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정치가들에게 외모가 중요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공개적으로 외모 찬양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정치에 외모가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다. 정치 책사 김종인 씨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을 찾아와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저렇게 생긴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던 정치가로 고대 그리스의 알키비아데스를 빼놓을 수 없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오가며 정치가로 활약했던 당대에 아주 유명했던 사람이다. 플라톤이 쓴 대화편으로 전해지는 ‘알키비아데스 1’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청년 알키비아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선 자네는 자신이 더없이 멋지고 훤칠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네. 그리고 이 점에서 자네 생각에 잘못이 없다는 건 누가 보더라도 분명하지.”(정암학당 플라톤전집) 알키비아데스는 객관적으로 잘생겼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 자신이 미남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미남에게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제법 잘 어울린다. 그래서 19세기 프랑스 화가 펠릭스 오브레는 매혹적인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알키비아데스를 그렸다.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음을 자각한 알키비아데스는 이제 그에 걸맞은 정치적 야심을 품는다.

펠릭스 오브레의 ‘창녀들과 함께 있는 알키비아데스’(1833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펠릭스 오브레의 ‘창녀들과 함께 있는 알키비아데스’(1833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외모는 정치적 자산 중의 하나일 뿐, 그것이 곧 정치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잘생기면 많은 사람이 추종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이 곧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바람직한 정치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사람들이 정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될 때 가능하다. 외모에 현혹돼 눈의 초점이 희미해지고 입가에 침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주체성을 견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이들의 지지를 그러모았다고 그것이 곧 바람직한 민주정은 아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걸세. 자네가 민중의 애인이 되어서 망가지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지. 아테네 사람들 중 많은 훌륭한 사람이 그와 같은 일을 당했으니 하는 말일세.” 외모를 가지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면 자칫 패가망신하게 된다. 왜? 인기를 얻으면 자만하기 쉽고, 자만한 자는 자신의 오류나 무지를 인정하려 들지 않게 된다.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당면 과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당면 과제에 대해 잘 몰라도 괜찮다.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잘 아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되니까.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가장 나쁘다. 그런 사람은 타인의 조언을 경청하지 않게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결국 패가망신한다.

필리프 셰리의 ‘알키비아데스의 죽음’(1791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필리프 셰리의 ‘알키비아데스의 죽음’(1791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잘생겼다는 이유로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그것은 크게 반길 일이 아니다. 늙어서도 사람을 홀릴 정도로 잘생긴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잘생긴 외모는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다. 잘생긴 당신에게 열광하던 사람들은 결국 당신을 버리고 떠날 것이다. 그들은 당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진 것을 사랑한 것이기에. 바로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만큼은 알키비아데스가 못생겨져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만이 자네를 사랑하는 자였고, 다른 사람들은 자네의 것들을 사랑하는 자였다란 걸세.” 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의 외모가 아니라 영혼을 사랑했으니까.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권고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화가 장바티스트 르노는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를 육감적 쾌락으로부터 끌어내는 모습을 그렸다.

소크라테스가 정치적 야망을 품은 알키비아데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제발 자기 영혼 좀 돌보라는 것이었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권력을 쥔 사람일수록 훌륭한 영혼이 깃들지 않으면 그 폐해는 무시무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약 좋아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는 있으나 선장의 정신과 훌륭함은 결여하고 있는 자가 있을 때, 그 자신과 그 동료인 뱃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들이 생길지 자네는 알겠는가?”

이러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는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 같은 젊은이들을 미혹시켰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고, 알키비아데스는 정치적 부침을 거듭하며 떠돌다 애첩 티만드라와 같이 있을 때 살해당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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