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공급망 동맹 못 믿겠다" … 국제기구 '엑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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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협정·기구에서 탈퇴하고 동맹국을 배신하는 ‘각자도생’ 전략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전격 탈퇴,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경제·통상 질서를 지키는 ‘빅브러더’ 역할을 하고, 국방 분야에서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고립주의로 선회하며 각국에 ‘이익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한 결과다.

◇통상 장벽 높이는 각국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최근 경제 분야에서 각국의 각자도생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4월 29일 50년 만에 OPEC 탈퇴를 선언한 UAE가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엔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핵심 기업을 외국 자본에 넘기지 않기 위해 무역 장벽을 높이는 국가가 증가하는 추세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4월 28일 공개한 관련 지침 개정안 초안에서 기업 인수합병(M&A) 허용 기준에 ‘경제 안보’를 넣었다. 반도체 등 첨단 전략산업과 관련해선 독자 생존을 위해 자국 기업 매각을 국가가 나서서 막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달 23일 한국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가 공작기계 제조사 마키노후라이스제작소를 인수하는 것을 두고 경제산업성이 ‘중단’ 권고를 내린 것도 궤를 같이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일본 정부는 “마키노가 국가 안보 관점에서 중요한 제조 기반을 구성하는 기술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며 어깃장을 놨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등을 검토하며 ‘독자주의’ 노선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WSJ 기고를 통해 “WTO는 실패했다”고 직격탄을 날리고 “미국은 무역 정책에 관해 독자 노선을 택할 것”이라고 선언한 게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관세 전쟁이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유럽연합(EU), 캐나다 등은 자국 생산·조달을 강화하고 관세 장벽을 높이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불붙는 군비 경쟁

국방 분야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란 전쟁 등 여파로 각자도생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던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에도 적대적 태도를 보이며 우방의 믿음이 허물어진 영향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에도 우방인 독일에 주둔한 미군 감축을 거론하며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독일을 압박했다.

각국의 ‘자력갱생’ 움직임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비 증액 움직임에서 확인된다.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지난달 27일 공개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군사비 지출은 총 2조8900억달러(약 4300조원)로 전년 대비 2.9% 늘었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핀란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은 지뢰 협약 탈퇴를 선언하고 재래식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1997년 체결한 국제 협약 탈퇴를 불사하고서라도 자국 안보 강화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호르무즈해협 통항을 놓고도 각국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프랑스, 이탈리아가 지난 3월 이란과 자국 선박 통과를 놓고 개별 협상을 벌였다. 유럽연합(EU) 차원의 공동 대응이 아닌 개별 행동을 두고 일부 유럽 국가에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독자 생존 압박 커져

향후 경제·국방 분야에서 각국의 독자주의 노선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상당 기간 고립주의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커스 놀런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미국은 지난 80년간 유지한 국제 질서인 다자무역주의와 결별했다”며 “미국이 WTO를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향후 무역정책 중심축이 이동하며 동아시아 국가에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미국의 적대국(이란 등)이 에너지와 공급망을 통해 동맹의 결속력을 흔들고 있다”며 “동맹국이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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