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자식들,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 해.”(2020년 11월 6일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당사자는 떠올리기 싫겠지만 4년 반이 더 지난 지금도 김 전 원내대표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 도중 전화기를 든 채 질렀다는 분노의 목소리는 필자의 기억에 또렷하다. 가덕도신공항 검증 용역 예산 20억원 증액을 둘러싸고 같은 당 소속의 김현미 전 국토부장관과 의원들 간 입씨름 현장에서 나왔던 험한 말을 두고 하는 얘기다.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쫓기고 있었다. 동남권신공항 건설을 놓고 김해신공항 확장 건의 취소 여부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덕도신공항에 매달린 민주당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험악해진 민심을 딛고 이듬해 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가덕도신공항의 그림을 꼭 보여줘야 한다는 데 당내 이견이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공항 건설 의지를 화끈하게 각인시키려면 예산은 물론 관련법 제정 등 모든 작업을 초스피드로 서둘러야 하는데 관료들이 절차를 따지며 굼뜨게 나오다니...
김 원내대표의 불호령은 가덕도신공항 사업의 급발진 신호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수일 후 국무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가 김해신공항 확장 백지화를 발표하고 2021년 2월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경제성, 안전성, 그리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정부 내 반대 목소리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4·7 보궐선거전에 돌입하자 생색내기 경쟁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4년여의 시간이 흐른 2025년 5월 8일. 현대건설이 10조 5000억원의 거액 공사비가 책정된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사업에서 손을 뗐다. 채산성을 따진 게 아니었다. 국토부와 지난해 10월 체결한 계약 조건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해저 60m 깊이의 초연약 지반에 외해(外海)조건까지 겹친 탓에 기술적 위험이 커 84개월 내 공기를 지키려다가는 안전을 희생하거나 부실시공을 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현대건설 측은 평균 250여 명의 전문 인력이 약 6개월간 머리를 맞댄 결과라고 밝혔다. 또한 성토 70m, 케이슨 설치(7개월)등 총 24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2029년 부분 개항은 무리라는 얘기다. 국토부는 후속사업자 모집에 나섰지만 업계에선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대와의 계약 전 실시된 4차례의 경쟁 입찰에서도 나선 곳이 없었던 데다 현대측 컨소시엄에 참가한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같은 쟁쟁한 업체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토부와 부산 지역 민심, 언론의 반응이 어땠으리라는 것은 설명이 필요 없다. 기업이 이윤 확보에만 매달려 정권 교체기의 정부를 우롱하고, 국책 사업의 중요성을 망각했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하지만 공항, 항만과 같이 자연재해, 기상이변 속에서도 오랜 세월을 버텨내야 할 인프라를 초스피드로 무조건 강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현대건설은 단일 규모로 1970년대 세계 최대로 평가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거뜬히 해내며 세계를 놀라게 한 신화의 주인공이다. 컨소시엄 다른 업체들의 성공 스토리도 곳곳에 널려 있다.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경청해도 좋을 이유다.
난공사, 대역사는 정치인들의 입과 머리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숙련된 기술 인력의 경험과 실력, 도전을 두려워 않는 기업인들의 투지가 없다면 이들의 호언장담은 한 조각 꿈에 불과하다. 대선 이 시작되자 후보들은 또 큼지막한 공약을 경쟁하듯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표 계산을 앞세워 밀어붙인 사업의 민낯을 우리는 보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의 꿈이 희망 고문으로 끝나서는 안 되지만 안전을 희생해서는 더 안 된다. 공기 준수라는 목표 아래 공사를 강행하다 많은 인명 피해와 손실을 초래한 부끄러운 사례가 우리에겐 너무도 많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