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 전주에서 만나는 한국 영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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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월드 프리미어’ ‘호루몽’ ‘떠나는 사람은 꽃을 산다’ ‘직사각형, 삼각형’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맨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월드 프리미어’ ‘호루몽’ ‘떠나는 사람은 꽃을 산다’ ‘직사각형, 삼각형’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맛의 고장 전주가 이번엔 영화로 입맛을 돋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스물여섯 번째 해를 맞아 다채로운 감각의 잔칫상을 차렸다. 패기 넘치는 단편부터 노련한 연출까지, 올해는 어떤 차림표를 관객의 식탁 위에 올릴까. 전주행 열차를 탈 영화 애호가라면 반드시 챙겨봐야 할 작품들을 짚어봤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흘간 전북 전주시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는 57개국 224편의 영화가 공식 초청됐다. 국내 작품 98편(장편 42편·단편 56편), 해외 작품 126편(장편 106편·단편 20편)으로, 전주에서 작품을 처음 공개하는 월드 프리미어만 80편에 달한다.

◇재기발랄한 단편 영화

전주국제영화제의 심장은 단연 단편 경쟁 섹션이다. 주류를 벗어난 독립·대안 영화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출발한 영화제답게 전주에선 늘 실험적인 작품들이 돋보였다. 올해도 단편 섹션에서 발군의 한국 영화들이 출품됐다.

김선빈 감독의 ‘월드 프리미어’는 6년 만에 영화제 초청을 받은 무명 감독과 그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한 절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그렸다. 꿈을 좇는 감독과 꿈을 포기한 배우의 달곰쌉싸름한 현실을 유쾌하게 풀었다. 영화의 백미는 유튜브 채널 ‘빠더너스’로 잘 알려진 배우 문상훈의 연기다. 넷플릭스 시리즈 ‘D.P.’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그는 영화를 버린 배우의 ‘시네필’(영화 애호가) 남편으로 등장해 존재감을 보여준다.

남소현 감독의 ‘떠나는 사람은 꽃을 산다’는 단편 프로젝트에서 보기 쉽지 않은 해외 올 로케이션 영화다. 독일 베를린에서 살던 중 귀국해야 하는 은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30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일상과 기억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

◇소수자 연대 그리는 장편

올해 한국경쟁 섹션은 LGBTQ(성소수자 약칭) 성향의 영화가 많다. 박준호 감독의 ‘3670’은 게이이자 탈북 청년인 주인공이 외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20대 청년다운 일상을 누리며 평범한 행복을 배워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전의 퀴어 영화와 달리 정체성에 대한 갈등과 편견보다는 우정과 연대에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다.

이일하 감독은 ‘울보 권투부’(2015), ‘카운터스’(2018) 등 다큐멘터리 장르로 재일조선인 사회와 일본 내 혐오 이슈를 조명했다. 신작 ‘호루몽’ 역시 재일동포 3세이자 인권 운동가인 신숙옥을 통해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 문화를 비판한다. 올해 영화제에선 주인공인 신숙옥 여사가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다.

◇감독이 된 배우들

최근 영화계에선 배우가 연출하는 영화가 늘고 있다. 올해 전주에서도 이런 경향이 눈에 띈다. 이희준 배우가 46분짜리 중편 코미디 영화 ‘직사각형, 삼각형’으로 돌아온 게 대표적이다.

‘코리안 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이 작품은 동생 부부 집에 모인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의 술자리가 소소한 안부와 농담에서 고성과 손찌검이 난무하는 난투극으로 변하고, 콜로세움식 야외 결투로 확장되는 이야기다.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2012)에서 영감받았다. 영화제 객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이정현 배우의 첫 단편 연출 데뷔작 ‘꽃놀이가 간다’도 같은 섹션에 초대받았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일반 예매 오픈 1주일 만인 지난 25일 기준으로 85%의 예매율을 기록했다. 73편의 작품이 벌써 전 회차 매진됐고, 매표소 오픈런도 벌어졌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루마니아 감독 라두 주데의 ‘콘티넨탈 '25’로 포문을 연다. 폐막작으로는 한국에 온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김옥영 감독의 ‘기계의 나라에서’가 선정됐다. 배우 김신록이 사회를 맡은 개막식은 30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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