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원재]‘혐중 시위’ 막을 ‘카운터 시위’가 필요하다

4 days ago 8

혐한시위 연상케 하는 혐중시위
한국에도 카운터 시위가 필요하다

장원재 논설위원

장원재 논설위원
이달 17일 저녁 서울 광진구 양꼬치 거리에선 청년 200여 명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행진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로 구성된 시위대는 “짱깨, 북괴,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빨리 꺼지라”는 구호를 수십 차례 반복하며 한자 간판 사이를 지났다. 한 음식점 직원과는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도 출동했다. 시위대는 해산 후에도 “뜨거운 물을 뿌리며 위협했다”며 해당 음식점에 ‘별점 테러’를 이어갔다.

이날 시위대의 모습은 일본에 있었던 혐한시위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2013년경부터 도쿄 신오쿠보 등 일본 내 코리아타운에서 행진하며 “조선인을 죽이자”, “바퀴벌레를 박멸하자” 같은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처음부터 거리로 나온 건 아니다. 일본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2채널’을 중심으로 재일교포들이 부당한 특권을 누린다는 루머가 확산됐다. 경제가 뒷걸음치며 고용 상황이 악화되자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던 이들이 재일교포를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이후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 결성됐고, 2012년 말 아베 정권의 재등장으로 극우 세력이 목소리를 높일 환경이 조성되면서 거리 시위가 본격화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경찰 보호를 받으며 혐오 발언을 일삼는 시위대 앞에서 신오쿠보 상인들은 무력했다. 대신 시위대를 막은 건 ‘카운터스’라고 불리던 일본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몇 배의 인원으로 시위대를 둘러쌌고, 경찰이 끌어낼 때까지 바닥에 앉아 행진을 막았다. 시위대 중 일부는 ‘친하게 지내요’라는 한글 손팻말을 든 친한파였지만, 다수는 “대상이 누구든 상관없다. 일본이 인종차별주의자가 활개 치는 나라가 되는 걸 용납할 수 없어 나왔다”고 했다.

혐한시위대를 수적으로 압도하는 카운터 시위를 보면서 용기를 얻은 재일교포들은 국회 증언을 하며 여론을 움직였고, 유엔 등 국제사회까지 나서자 일본 국회는 2016년 헤이트 스피치 규제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해 6월 5일 가와사키시에서 카운터 시위대와 재일교포가 함께 혐한시위대를 둘러싸고 신고 집회를 처음 취소시켰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재일교포 변호사는 “드디어 막았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감격스러워했다. 이후 혐한시위대의 기세는 한풀 꺾였고, 대규모 거리 시위도 자취를 감췄다.

코리아타운에 난입한 혐한시위대와 광진구 양꼬치 거리를 행진한 혐중시위대는 닮은 구석이 많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소수집단의 탓으로 돌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외국인이 특권을 누린다’는 음모론을 퍼뜨리며,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환경이 조성되자 거리로 나와 혐오 발언을 일삼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리 집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자칭 ‘애국보수 청년’들은 전국 곳곳에 ‘중국인 유학생은 100% 잠재적 간첩’ 등의 플래카드를 걸며 혐오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정당 현수막이라 철거도 쉽지 않다. 중국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좋든 싫든 다문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한국에서 음모론에 기반해 특정 국적자에 대해 혐오 발언을 일삼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시위대는 스스로를 보수로 규정하지만 원색적 혐오 발언은 보수의 품격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온라인에선 이미 혐오 발언을 일삼는 극우 유튜버들을 신고해 자금줄을 차단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혐한시위대를 막은 일본 시민들에 빗대 스스로를 ‘카운터스’라고 부른다. ‘카운터 스피치’는 유엔에서 헤이트 스피치에 맞서는 방법 중 하나로 권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차이나타운에서 혐중시위가 벌어진다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카운터 시위대가 비폭력적 방식으로 이들을 막아 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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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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