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과정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헌재에 관한 별별 말들이 돌았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놓곤 문형배·이미선 전 재판관 퇴임 전까지 결론을 못 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재판관들을 정치 성향에 따라 분류하면 인용하기에는 진보 측 재판관이 부족하고, 기각이나 각하를 하기에도 애매한 숫자라는 게 이런 분석의 근거였다. 선고가 늦어지자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놓고 구여권과 야권이 극단적으로 대치한 이유이기도 하다.
성향대로만 판단하진 않는 재판관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988년 헌재 설립 이후 한 명의 ‘우군’이라도 더 재판관으로 앉히려는 보수-진보 정치권 간의 물밑 싸움은 계속돼 왔다. 각 진영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사건에서 재판관들의 ‘표 대결’이 벌어질 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한 대행이 대통령 몫 재판관 2명 지명을 강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에 대해 만장일치로 파면 결정이 나온 것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는 이런 계산법이 들어맞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10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소원은 인용되면 진보 진영에 타격이 불가피한 사건들이었다. 같은 재판관 9명이 심리했고, 많게는 7명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됐다. 재판관들이 성향 그대로 의견을 냈다면 두 사건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겠지만 실제로는 탄핵은 기각, 헌법소원은 인용(위헌)이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도 비슷하다. 재판관 8명 중 적어도 5명이 보수 성향으로 평가됐다. 당시 청와대에선 이 중 3명 이상이 파면에 반대해 기각 결정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결과는 만장일치 인용이었다. 사안의 성격과 중대성, 당시 여론의 흐름 등을 감안했을 때 이들 사건에서 헌재의 결정은 합리적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중평이다.
이는 재판관들의 ‘집단지성’이 작동한 결과라고 본다. 물론 인용과 기각이 4 대 4로 팽팽하게 나온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처럼 재판관들의 색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취임 이틀 만에 탄핵소추된 이 위원장에 대해 예상보다 인용 의견이 많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지만, 결과는 기각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각 재판관의 성향이 표출되더라도 이를 종합한 최종 결론이 상식의 궤에서 벗어날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우군’ 심기 지양하고 헌재 존중해야 대법관과 함께 사법기관의 최고위직인 헌법재판관은 대부분 그에 걸맞은 능력과 연륜을 갖춘 인물들이 맡아 왔고, 밖에서 분류하는 성향대로 기계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더욱이 위헌 법률, 헌법소원, 탄핵, 권한쟁의 심판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인용되는 ‘가중 정족수’가 적용된다. 재판관들의 중지가 모여야 결론이 나올 수 있게끔 만든 일종의 안전장치다.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에 각 3명씩 재판관 지명 또는 추천권을 배분한 현행 헌법의 방식이 이상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는 헌재의 자율성과 재판관들의 양식을 통해 편향 우려를 극복해 왔다. 진보-보수 정치권이 이를 존중하고 헌재의 중립성 강화 방안을 고민하지는 못할망정 더 극단으로 치우친 재판관을 심어 헌재를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접길 바란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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