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이문재(1959∼ )
우리는 우리의 등이나 엉덩이를 곧잘 잊고 지낸다. 얼굴이나 손은 그렇게 자주 챙기지만 안 보이는 등은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다 종기라도 나서 욱신거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등이 아프면 등이 자꾸 나를 부른다. 엉덩이가 아프면 엉덩이가 자꾸 나를 보챈다. 있었지만 없었던 곳이 ‘나 여기 있소’ 하고 자기주장을 한다. 고통의 의미는 일종의 발견인 셈이다. 고통이 싫어도 고통으로 인해 얻게 되는 의미까지 싫다고는 할 수 없다. 고통 없는 삶은 불가능하고, 의미까지 없다면 우리는 고통 앞에서 너무 억울하니까 말이다. 이 시에서도 고통이 등장한다. 그것은 훅 들어와 자기 존재를 주장한다. 주머니에 있는 돌처럼 불편하고 신경 쓰인다. 시인은 그것을 신속하게 던져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고통을 겪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고통의 돌멩이는 내 맘대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통아, 너도 나와 함께 가자’는 편을 택한다. 버티고 다듬어 품으면 우리는 조금 더 잘 참고 견디고 이기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파도 같은 고통이 날마다 모래 같은 우리를 때리려 든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시에서 말하는 ‘우리의 힘’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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