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정상급 무대에서 활약하는 소프라노 박혜상이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를 구성지게 뽑아냈다. 판소리 특유의 탁성을 살리면서도 곱고 경쾌한 그의 음색은 선명한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 피아노와 첼로, 대금 등 동서양 악기가 어우러진 반주는 사랑가에 담긴 애절함과 발랄함을 한층 도드라지게 드러냈다.
1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박혜상의 가곡 리사이틀 ‘한국 가곡 연대기: 노래로 맺은 인연’은 신라 향가와 조선 시조, 판소리부터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 독일·아르헨티나 가곡과 근현대 한국 가곡까지 동서양 노래를 폭넓게 엮은 무대였다. 대금 연주자 이아람, 피아니스트 문재원, 첼리스트 이호찬이 함께 하며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사운드를 빚어냈다.
신라 향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와 조선 시조 ‘북천이 맑다커늘’을 바탕으로 한 창작곡으로 공연의 문을 연 박혜상은 담박하면서도 귀를 붙드는 음색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어 슈베르트의 ‘송어’에선 맑은 물속을 헤엄치던 송어가 어부가 일으킨 흙탕물에 속아 잡히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 속 시에 슈베르트가 선율을 붙인 ‘물레 잣는 그레트헨’에서는 사랑으로 파멸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연인을 향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는 인물의 절박함을 표현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물레를 묘사한 피아노 선율 위로 박혜상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요동치며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2부 초입에 부른 ‘산유화’는 김소월의 시에 작곡가 김순남이 곡을 붙인 작품이다. 서정적이면서도 쓸쓸한 선율과 경건한 목소리가 어우러지며 자연 속 인간의 고독을 짙게 드러냈다. 가사 없이 모음으로만 노래하는 ‘보칼리제’에서는 박혜상 특유의 투명한 음색과 유려한 호흡이 더욱 또렷하게 빛났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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