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29일 서남권에 약 80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팹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과거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계획 발표 당시와의 차이점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19년에는 기업의 절박한 요청에 따라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준 ‘보텀업’ 의사결정이었다면, 이번엔 ‘톱타운’으로 투자 결정이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가 2019년 2월 22일 내놓은 보도 참고 자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당시 반도체 제조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를 확보하고자 용인시,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산업부에 수도권 산업단지 공급물량 추가 공급을 요청했다. 이에 산업부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국가적 필요성을 검토해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당시 SK하이닉스에 용인 투자는 생존 문제였다.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 부지가 포화 상태에 달했는데, 우수 연구개발(R&D) 인력이 경기 남부 이남으로는 내려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경북 구미, 충남 천안 등 비수도권 지자체가 ‘수도권 신규 팹은 안 된다’며 삭발 투쟁까지 벌였지만, 산업부가 총대를 메고 국토부에 ‘수도권 산업단지 특별물량’ 배정을 요청했다.
산업부는 당시 용인이 120조원 반도체 클러스터로 선정될 것이라는 본지 보도에 대해 수도권 규제 완화와 관련한 정치적 논란을 의식해 부인했지만, 열흘 뒤 ‘반도체 팹 4곳을 짓는 프로젝트’라고 내용을 인정했다. 이후 삼성전자의 투자가 결정되면서 용인은 총 622조원이 투입되는 메가 클러스터가 됐다.
그러나 이번 서남권 클러스터는 청와대가 사실상 투자 결정을 주도한 톱다운 방식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전직 경제 관료는 “양대 기업에 투자 의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정말 서남권이어야 하고 지금 투자 계획을 확정하고 싶은 건지 묻고 싶다”고 했다.
반도체 사이클에서도 2019년과 지금은 차이가 있다. 2019년 반도체 시장은 완연한 불황기였다. 남들이 투자하지 않을 때 조(兆) 단위 투자를 결정해야 향후 호황기에 과실을 딸 수 있다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성공 공식에 부합하는 투자였다. 당시 산업부는 보도 참고 자료에서 “산업 경기 둔화와 글로벌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지금이 미래시장 선점과 경쟁력 유지 강화를 위한 투자 적기”라고 썼다.
그러나 지금은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초호황기다. 메모리 수요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결국 반도체는 사이클산업이고 언제 불황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새 팹의 착공 시점인 3~4년 후가 되면 시황이 완연한 내림세로 돌아서 서남권 팹의 첫삽조차 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당장 ‘발등의 불’인 용인과 평택 팹의 인프라 구축도 용수, 열, 전력 등 문제로 버거운 상황”이라며 “기존 수도권 팹이 성공적으로 가동돼야 서남권 투자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대훈/박종관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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