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물의 색과 향, K-뷰티에 스며들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1 hour ago 3

국가유산청과 클리오가 손잡고 우리 식물의 색상을 재현한 헤리티지 화장품. 국가유산청·클리오 제공

국가유산청과 클리오가 손잡고 우리 식물의 색상을 재현한 헤리티지 화장품. 국가유산청·클리오 제공

궁궐 창문을 열면 눈앞에 고운 풍경이 펼쳐진다. 매서운 겨울 끝에도 굴하지 않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여름 장마 속에서 황금빛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감주나무. 전통이 간직한 이 빛깔과 향기가 K-화장품으로 거듭났다.

국가유산청과 K-뷰티 대표 기업인 클리오가 K-컬처 확산을 위해 최근 선보인 ‘프로 아이 팔레트 에어 헤리티지 에디션’ 얘기다. 국가유산의 가치를 담아낸 특별한 스토리텔링 상품의 진가를 소비자들이 알아봤다.

●천연기념물 식물이 눈가에 피어나다
매화는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다. 인내와 고결을 상징해 고려와 조선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자주 남겼다. 모감주나무는 영어로 Goldenrain tree(‘황금비가 내리는 나무’라는 뜻). 황금빛 꽃이 나무 끝에 수십 개 모여 피는 귀한 생명 자원이다. 충남 태안 안면도, 경북 포항시, 전남 완도군의 군락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 군락지. 국가유산청 제공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 군락지. 국가유산청 제공

국가유산청과 클리오는 두 식물의 색을 구현하기로 하고 국내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와 손잡았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매화 빛 댕기’와 ‘모감주 밑 서재’다.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번들거림을 없애고 맑은 질감으로 색상을 구현했다. 꽃망울 노리개, 고요한 고궁, 나무 빗장…. 색감만큼 이름도 곱다.

●한국적 미의식의 현대적 경험
제품 기획의 모티브는 궁궐 속 풍경에서 출발했다. 올리브영 단독 기획 세트의 창틀 디자인은 창덕궁 돈의문이다. 용기 뚜껑을 열 때 궁궐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단품 상자 디자인에는 창덕궁 부용정과 낙선재 뒤편의 상량정이 적용됐다. 단청 문양은 경복궁에서 따왔다. 모두 국가유산청의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자인했다.

제품 디자인에 적용한 창덕궁 부용정. 국가유산청·클리오 제공

제품 디자인에 적용한 창덕궁 부용정. 국가유산청·클리오 제공

팔레트 용기의 양쪽 끝 창틀 밖으로는 매화와 모감주나무의 풍경이 펼쳐진다. 왕비가 창가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화장을 즐기는 장면이 절로 연상된다. 단순한 패키징을 넘어 소비자들이 전통적 미감을 현대적으로 경험하게 한 것이다. 올리브영 단독 기획 세트에는 댕기 머리 장식(스크런치)이 포함됐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왕실 유물인 영친왕비의 앞 댕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한정판 패션 굿즈다. MZ세대 소비자들이 소장 가치를 느껴 열광적으로 구매에 나섰다.

영친왕비 댕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댕기 머리장식 사은품. 국가유산청·클리오 제공

영친왕비 댕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댕기 머리장식 사은품. 국가유산청·클리오 제공

이번 협업은 국가유산이라는 확실한 내러티브를 상품에 입혀 차별화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전략도 큰 역할을 했다. 클리오는 광복절 전날 밤 9시, 국가적 상징성이 큰 시점에 맞춰 신제품 홍보 콘텐츠를 공개했다. “역사와 뷰티의 만남이 감동적”, “소장각”, “한국 여행 가면 꼭 사야겠다”는 반응들이 이어지며 판매로 이어졌다.

이번 판매 수익의 일부는 국가유산 보존과 가치 확산에 기부된다. 왕실 유산 가운데 동·식물 문양을 품은 유물의 보존 처리에 쓰일 예정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화장품을 구매하는 순간 국가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기여하는 셈이다.

●국가유산과 만난 K-뷰티
코스맥스는 국가유산청과 손잡고 조선 왕실의 정취를 담은 ‘궁궐 향수’도 최근 개발했다. 창경궁 내 옥천교 주변 앵도나무와 주변 꽃향기, 덕수궁 석조전 앞 오얏나무 꽃향기를 향수로 담아냈다. 국립고궁박물관을 비롯해 경복궁 창덕궁 등과 온라인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코스맥스는 2016년부터 한국의 역사 속 향기를 재현하는 ‘센트리티지(Scenteritage·Scent와 Heritage의 합성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코스맥스가 동아일보와 손잡고 2020년 내놓았던 동아일보 100주년 기념 ‘한국의 향:1920℃’다. 송연묵(소나무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 만든 한국 전통의 먹)을 재현해 특허 출원한 한국의 묵향으로, 100년의 향기와 지조 있는 선비 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코스맥스는 이밖에도 안동서원 배롱나무꽃향, 제주 문방오우 석창포향 등 지금까지 20여 종의 우리 향을 재현했다.

1920℃’.

코스맥스가 동아일보와 손잡고 2020년 내놓았던 동아일보 100주년 기념 ‘한국의 향:1920℃’.

국가유산청은 이달 초엔 호작도 여권 케이스를 선보여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을 이어갔다. 상당수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 방문 때 올리브영을 찾는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을 기념하는 아이템’으로 제공했다. 디즈니코리아, 내셔널지오그래픽 어패럴 등과도 손잡고 우리 자연유산의 글로벌 콘텐츠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클리오가 손잡고 내놓은 호작도 여권 케이스.

국가유산청과 클리오가 손잡고 내놓은 호작도 여권 케이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우리 정체성과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국가유산과 K-뷰티가 만나 K-컬처로 확산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돼 뜻깊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협업을 통해 우리 유산의 가치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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