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개발자 100명이 모두 샌디에이고에 왔습니다. 최신 인공지능(AI) 솔루션과 보안 기술을 현장에서 직접 보기 위해서요."
현지시각 11일 오전, 시스코 라이브 2025의 기조연설이 끝난 직후 미국 샌디에이고 컨벤션센터에서 영어 다음으로 많이 들리는 언어는 다름 아닌 일본어였다. 개막일에는 일본 개발자들을 태운 대형 '전세 버스'가 행사장 앞으로 줄지어 늘어서는 풍경도 벌어졌다. 현장에서 만난 한 일본 정보통신(IT) 기업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 기술 관련 업무를 하는 직원 50여 명 모두 올해 시스코 라이브 2025를 참관하기 위해 샌디에이고를 방문했다"며 "자사 외에도 일본 기업 20곳 이상이 샌디에이고까지 개발자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일본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시스코가 새로운 에이전틱 AI 서비스와 보안 방화벽 인프라를 발표한다는 정보를 듣고 급하게 샌디에이고행 비행기를 알아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이미 도쿄에서 샌디에이고로 오는 직항은 행사 기간 내내 매진된 상태였다"며 "무려 2회 경유를 하고 나서야 샌디에이고에 올 수 있었다"고 했다. 현장을 돌아본 뒤 일본 기업 관계자가 많은 것을 보고는 "일본이 이렇게 달라졌다"고 평가하는 시스코 임원들도 있었다.
이번 행사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은 미국 현지에서 이뤄지는 기술 발표 현장에 자사 개발자들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AI 관련 신기술이나 서비스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장에는 단 1명이라도 직원을 보낼 만큼 AI 사업에 적극적이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2023년부터 적극적으로 '아날로그 탈출'을 선언하며 AI 부흥 정책을 펼치자 기업들의 관심이 더욱 커졌다는 게 현장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실제 일본은 지난해 11월 오는 2023년까지 AI 지원에 10조엔의 예산을 쓰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일본인 AI 전문가는 "이미 일본은 디지털 전환(DX)에서 한국과 중국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그럴수록 인공지능 전환(AX)으로 직행해 글로벌 시장 우위를 선점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오픈AI 등 미국 빅테크들이 속속 일본 내부에 지사를 세우는데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일본 투자액을 늘리는 상황이 일본 기업들의 관심을 끌어올린 자극제가 됐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AI 등 인프라 기업들이 발표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오전 기조연설을 통해 시스코의 신규 솔루션 'AI 캔버스'가 공개된 뒤 부스가 차려진 현장에서는 시스코 직원들에게 해당 서비스의 도입에 관해 묻는 일본 기업 관계자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행사에 참석한 글로벌 애널리스트들도 일본 기업들의 참전에 주목했다. 미국의 한 애널리스트는 "일본 기업들이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다는 건 다 옛말"이라며 "시스코의 이번 행사를 통해서도 그 사실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