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금리 13~14%…시중에 돈 말라
집장만 포기 늘어…“분노-절망 넘어 해탈”
싱가포르보다도 높은 90%의 자가 소유율을 자랑하는 나라. 바로 베트남이죠. 그만큼 ‘집 한 채는 꼭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전통적으로 강한 나라인데요. 그런 베트남에서 요즘에 부쩍 내집 마련을 포기한 젊은 세대가 늘어만 갑니다. 몇 년 새 대도시 집값이 너무 말도 안 되게 뛰었기 때문이죠.결국 베트남 정부가 주택정책의 방향을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주택 소유’ 대신 ‘장기 임대’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데요. 베트남이 주택 소유를 포기하는 이유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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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한 베트남 집값
“난 평생 일해도 아파트를 못 살 거야.”요즘 베트남 젊은이들이 많이 하는 말입니다. 한국과 비슷하다고요? 그렇긴 한데, 수치상으로 보면 베트남이 더하죠.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베트남 대도시 아파트값 상승률은 300%에 달합니다. 서울 집값 상승률(10년간 약 143%)을 뛰어넘죠. 요즘 호치민이나 하노이에 들어서는 신축 아파트는 ㎡당 분양가가 1억 동(580만원)을 넘는 것도 많아요. 도심의 방 두 개 70㎡(전용면적 21평)짜리 신축 아파트 가격이 약 4억원(70억 동)까지 치솟은 거죠.

그런데 여기까지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어차피 집값은 오르게 돼있어. 그러니까 빚을 내서라도 얼른 집부터 사.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사!’
이런 공포(FOMO)로 인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절정에 달했던 2024~2025년. 호치민·하노이에선 아파트 분양권에 수억 동의 프리미엄이 붙어 팔려나갔습니다. 거주가 아닌 더 비싸게 되팔려는 목적의 투기꾼들이 몰려들었죠. 집값은 이미 비싸지만, 일단 사면 가격이 무조건 뛸 테니까요. 베트남은 한국과 달리 주택 보유기간이 얼마든 양도세율이 똑같기 때문에, 단기매매에 매우 유리한 구조입니다.
집값이 워낙 비싸니 담보인정비율(LTV) 한도인 매매가의 70~80%까지 은행 빚을 내서 집 사는 건 흔한 일이었고요. 또 마침 대출 이자율이 베트남 기준으로는 저금리인 연 5%대였기에, 공격적인 투자자들이 많았습니다.

베트남에선 건설사가 주택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9개 정부기관을 거치며 30개 넘는 도장을 받아야 해요. 모든 인허가 절차를 마치는 데 최대 3000일(8.2년)이 걸릴 수 있죠. 끝없는 관료주의의 벽에 가로막혀서 주택 개발 허가 건수는 급감했습니다(2020년 연간 743건→2025년 상반기 58건).
이렇게 행정비용이 많이 드니 건설사는 돈이 될 만한 프로젝트만 진행하려고 하죠. 그러니 새로 들어서는 건 온통 비싼 고가 주택뿐입니다. 올해 1분기 호치민시 신규 공급 아파트 중 72%는 분양가가 ㎡당 1억3000만 동(754만원)을 넘었고요. 중산층이 노릴 만한 중급(㎡당 9000만 동, 522만원 이하) 아파트 공급은 아예 제로였어요. 공급은 쪼그라들고 투기꾼은 활개 치는 광기 어린 부동산 시장이 펼쳐졌던 거죠.
대출금리 14%의 날벼락
그리고 드디어 이 폭등장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근 베트남의 금리가 아주 무섭게 뛰고 있기 때문이죠. 5%대 대출금리는 옛말이 됐고, 13~14%대 고금리가 다시 돌아왔는데요.베트남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재융자율’을 3년 넘게 4.5%로 동결 중입니다. 그런데도 왜 은행 대출금리는 이렇게 무섭게 뛰었을까요? 한마디로 시중은행에 돈이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경기호황과 부동산 시장 과열로 대출은 폭증하고 예금은 줄어든 탓이죠.올해 1분기 베트남 주요 은행의 예대율(예금에 대한 대출 비율)이 100%를 넘어섰어요. 은행이 예금으로 받은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을 내줬다, 즉 은행 곳간이 텅 비었다는 뜻이죠. 은행엔 비상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요.
1~2년 전 변동금리로 은행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던 이들은 큰일 났습니다. 이미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냈는데, 갚아야 할 이자가 갑자기 불어나 버렸으니까요. 금리가 치솟자 단기 차익을 노리고 달려들던 투기꾼들은 자취를 감췄고요. 속속 가격을 낮춘 급매물들이 나오곤 있는데, 안 팔립니다. 대출 금리가 14%인데 지금 누가 살 수 있겠어요.
거래는 얼어붙고 집값은 정체된 채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눈치 보는 분위기라 할 수 있는데요. 이대로 베트남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질지, 아니면 잠시 숨고르기일지는 전망이 엇갈립니다.
소유에서 거주로, 패러다임 바뀐다
여기서 주목할 건 베트남 젊은 세대의 반응이죠. 한동안 집값이 터무니없이 뛰더니, 이제 금리까지 무섭게 치솟았어요. 그러자 아예 ‘집 사기를 포기한다. 그냥 월세로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늘어만 갑니다. 분노와 절망을 넘어 이제 해탈의 단계에 접어든 셈인데요.베트남 언론에 소개된 사례들을 볼까요. 호치민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젊은 부부. 합산 월 소득이 4200만 동(247만원)에 달하지만, 집 구매 계획을 취소하고 월 900만 동(53만원)짜리 작은 월세집에서 계속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죠. “저희는 35억 동(2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고 은행 대출을 받을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원리금 상환금이 월 2500만 동(147만원)에 달해서 생활비까지 더하면 감당하기가 힘들겠더라고요.”
또다른 29세 직장인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예전엔 35세 전에 집을 사는 게 목표였는데, 부담감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 월 1000만 동(59만원)에 45㎡짜리 아파트를 빌렸죠. 투자나 저축을 위한 돈을 마련할 수 있어서 (월세가) 더 좋아요.”

그리고 이건 베트남 전통 가치관을 생각하면 꽤 파격적인 변화입니다. 베트남에서 부동산은 오랫 동안 최고의 자산증식 수단으로 여겨졌고요. 집 한 채는 꼭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는데요. 이게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중요한 변화. 정부도 방향을 틀기 시작했어요. 5월 24일 토람 국가주석은 공식 회의에서 “주택은 살기 위한 것이지 투기나 자산 축적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죠. “지금부터 2030년까지 분양 주택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특히 주요 도시와 산업단지, 그리고 주택 가격이 소득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지역에서는 임대주택을 전략적 축으로 삼아야 한다.”
자가 소유율 90%의 베트남이 임대주택 중심으로 전략을 바꾼다니, 패러다임의 큰 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시 거주자 절반 이상이 임대주택에 사는 독일과 일본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오죠. 지난달 팜 민 찐 총리는 하노이시 정부에 대규모 장기 임대주택 건설 프로젝트를 당장 6월 안에 착공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어요. 임대주택 늘리기 속도전에 나선 거죠.

도로, 공항, 철도, 발전소 등 기초 인프라 깔기에도 바쁜 베트남 정부가 임대주택까지 할 여력이 과연 있을까요. 방향은 좋고 계획은 원대하지만, 결과는 좀더 지켜봐야 겠군요. 어느 나라나 역시 부동산 문제 해결은 쉽지가 않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6월 19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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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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