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교수
청소년 환자 절반 이상 성인까지 지속… 치료 거부 많아 맞춤형 접근 필요
약물치료, 전두엽 기능 향상에 효과… 인지행동 치료는 부모 역할 중요
청소년 환자 3분의 1은 극적 호전
사춘기 반항쯤으로 여기며 지켜보길 1년 반. 생활과 학습은 물론 정서까지 무너졌다. 중학교 2학년인 김 군은 최근에야 병원을 방문했다. 김붕년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내렸다. 부모는 가슴이 철렁했다. 너무 늦지 않았나 싶어 불안했다. 치료는 난항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 치료 난도 높은 청소년 ADHD
ADHD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관련 정보가 넘쳐나고 자가진단 도구도 대중화됐다. 의학계에선 특히 청소년기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ADHD를 진단받은 어린이의 70%는 청소년기까지 증상이 이어진다. 이 중 50~65%는 성인이 돼서도 증상을 겪는다. 청소년기는 성인 ADHD로 가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길목인 셈이다.
ADHD 청소년의 사춘기는 더 가혹하다. 이 시기 또래 관계는 복잡해지고 학습 내용도 어려워진다. 아동기에 수월하게 지나가던 일들이 전부 ‘허들’로 바뀐다. 모든 것의 난도가 높아지니 학교에서는 적응문제가 자주 터진다. 이로 인한 불안, 우울, 폭력, 중독 등 정서 문제도 덩달아 커진다.
실제 동반되는 증상은 청소년기 이후 본격적으로 불거진다. 의학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ADHD 진단 청소년은 일반 청소년 대비 자살 의도를 가질 확률이 6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ADHD 아동은 욕구를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많아 내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라며 “오랜 분노와 절망 등이 사춘기에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고 했다.
● 조기 발견-적기치료 중요ADD는 감정·행동 표현이 적은 여학생이 많다. 부정적 피드백이 거의 없어 알아채기 어렵다. ADHD와 달리 보통 초등학교 3, 4학년 이후에 발견한다. 김 교수는 “ADD는 학습 난도가 높아지는 초등학교 중고학년 이후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 저학년까지 지능으로 집중력 부족을 메우다가 고학년 이후 병원을 찾기도 한다”라고 했다.
너무 이른 발견은 의미가 없다. 4~6세 진단은 특히 신중해야 한다. 이 시기엔 운동 감각을 조절하는 대뇌 피질이 빠르게 자란다. 아이는 활동량이 많아지고 충동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특징이 엄격한 교육환경을 만나 부적응을 겪으면 아이가 산만해 보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반응을 ADHD로 착각하면 안 된다”며 “부모의 그런 오해는 자녀의 또 다른 정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은 보통 만 7세 이후에 가능하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행동 패턴, 학습 태도, 관계 형성 방식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이의 특성과 기질도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병원 쇼핑’을 다니며 재검사를 받는 것은 좋지 않다. 검사를 반복할수록 결과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 3분의 1은 극적 호전
ADHD 진단 청소년의 치료 경과는 양극단으로 나뉜다. 3분의 1은 극적으로 호전된다. 약물치료를 종료하는 경우도 많다. 전전두엽의 왕성한 발달 시기와 맞물려 치료 효과가 배가되기 때문이다. 경과가 좋은 환자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보인다. △공격성·중독·우울 등 공존 병리가 없고 △충동 조절과 관련된 문제가 적으며 △인지능력이 좋은 편이다. 김 교수는 “전반적인 생각의 조직화 능력이나 학습 이해능력이 좋고 공존 병리가 없는 경우 약물치료의 효과가 뚜렷한 편”이라고 했다.
설득의 핵심은 ‘이해’와 ‘참여’다. 사춘기에는 부모가 자신의 욕구를 존중해주길 강하게 원한다. 존중의 핵심은 소통 방식이다. 가장 조심할 부분은 가치판단이다. 이 시기 자녀들은 예술 운동 게임 등에 쉽게 빠진다. 이때 부모가 무턱대고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느낀다. 마음의 거리가 생기면 치료를 시작할 기회의 문이 닫힌다.
김 교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아이를 통제해선 안 된다. 청소년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부모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며 “아이의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면 정서적 친밀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 학교 현장에서 배려 필요
ADHD 치료는 크게 △인지행동 치료 △사회기술 훈련 △약물 치료로 나뉜다. 뇌 자극 치료(TMS, tDCS), 뉴로피드백, 앱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 등도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되진 않았다.
인지행동 치료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상 속에서 동기를 북돋워 주고, 시간 관리를 돕고, 보상을 통해 행동을 조절하는 식이다. 다만 청소년기에는 보상 활용은 지양하는 게 좋다. 자녀의 주도성을 존중하며 친밀도를 높이는 쪽이 더 효과적이다.
사회기술 훈련은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ADHD 아동은 욕구가 앞서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눈치 없는 아이라는 오해를 사기 쉽다. 전문기관이나 부모는 상황별 대인관계 기술을 교육해 이런 부분을 고치도록 돕는다.
해외에서는 보통 학교, 전문기관, 부모 3각 네트워킹으로 치료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협업이 쉽지 않다. 김 교수는 “ADHD는 교육과 치료가 함께 가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현실적으로 교사가 훈육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구조라 아쉬운 상황”이라고 했다.
약물 치료는 전두엽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서울대 ADHD 클리닉이 200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7~14세 아동을 조사한 결과, 약물치료를 받은 아동의 전두엽에서 기능적·구조적 향상이 관찰됐다.
‘문예체’도 중요하다. 문화·예술·체육은 치료가 아닌 교육의 영역이다. 하지만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치료 못지않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에 몰입하는 동안 정서가 안정된다. 동기가 생기면 의욕도 살아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주의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ADHD 아이들 중에는 에너지와 창의성이 뛰어난 경우가 많다”며 “시험 시간을 더 주거나 공간적으로 조금만 배려해도 이들이 잠재력을 훨씬 더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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