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테니스를 잊고 살았었어요. 중고교 시절 테니스 선수였고, 대학도 특기생으로 들어갔는데…. 선수 생활하며 어느 순간 ‘난 엘리트 선수로는 성공하지 못하겠다’라는 판단을 했어요. 그때부터 테니스를 등한시했죠.”
박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취미로 테니스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복식 파트너 역할도 했다. 그는 “테니스를 좋아하는 아버지께서 제가 테니스를 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복식 파트너로 삼았다”라고 했다. 박 교수는 언니 소개로 서울 진선여중에 테니스 선수로 입학했다. “제가 6학년 때 진선여중 2학년인 언니가 테니스 감독인 담임 선생님이 선수를 찾고 있다고 해 제게 테스트받을 것을 제안했다”고 했다.반대를 무릅쓰고 테니스를 다시 시작했는데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라켓을 놓았다. 박 교수는 “아버지께서 ‘재능이 있다면 지금쯤 전국대회 4강은 가야 한다’며 운동을 그만두라고 했다. 당시 전 전국대회 16강, 8강 정도 갔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약 두 달 뒤에 다시 라켓을 잡았다. “테니스 생각만 났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늘 풀이 죽어 있던 박 교수를 본 어머니가 ‘그렇게 테니스가 좋으면 다시 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아버지께서도 ‘정말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넌 능력이 안 된다. 나중에 부모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진선여고 2학년이 돼서야 “아버지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숙명여대 행정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199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어려울 때였죠. 아버지는 유학을 반대했어요. 제가 장학금을 받는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죠. 그래서 제가 ‘그럼 한 학기만 도와달라’고 하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어머니도 ‘한 학기만 하고 돌아오라’고 했죠. 열심히 살길을 찾았고, 두 번째 학기부터 장학금을 받았어요.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테니스 선수 경험 덕분에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스포츠 문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문화를 더 광범위하게 연구하는 일리노이대 커뮤니케이션 학과로 옮겨 세계의 문화를 더 심도 있게 공부했다. 2008년 ‘육체 식민주의: 식민지 조선의 의학, 재생산, 그리고 인종’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운동선수 시절부터 인간의 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문화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게 됐다”고 했다.
박 교수가 박사 학위를 받을 때쯤 ‘한류’ 여파로 한국학이 붐을 이뤘다. “저도 귀국하기보다는 한국학으로 미국에서 교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때 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게 됐죠. 당시 UC버클리대에서도 강의해달라고 했고, 운이 좋게도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한국학은 아니지만 아시아 여성 연구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는다는 겁니다. 조건이 아시아 언어를 2개 이상 하고 여성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이었죠. 지원서를 냈는데 됐습니다.”
박 교수는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1년 했고,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조교수로 4년 강의한 뒤 2013년 한국외국어대에 둥지를 틀었다. 귀국 초기엔 한국에 다시 적응하느라 테니스를 제대로 치지 못했다. 동호회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테니스코트 확보도 쉽지 않았다. 지인들과 간간이 어울려 치다 2019년쯤 김문일 전 테니스 국가대표 감독(78·현우서비스 대표)이 운영하는 효천클럽을 알게 됐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주 2~3회 테니스를 치고 있다.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해 근육운동과 달리기도 하고 있다.
박 교수에게 이제 테니스는 삶 그 자체가 됐다. 그는 “학생들로부터 제가 테니스에 비유해서 설명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테니스는 인생의 축소판 같아요. 순발력도 필요하고, 지구력도 필요하죠. 공격해야 할 때도 있고, 수비적으로 나가야 할 때도 있죠. 경기하면서 상대방을 계속 분석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도록 자신을 컨트롤하기도 해야 하죠. 테니스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웁니다.”
박 교수는 이렇게 테니스를 치며 연구에 더 집중했다. 내년 9월엔 하버드대 출판부를 통해 영문 서적도 출간한다. 그는 “박사 학위를 모태로 한 책”이라고 했다. 책 제목은 ‘Bodies for Empire: Biomedicine, Race and Women’s Disease in Colonial Korea(제국의 몸: 식민지 조선의 의학, 인종, 그리고 부인병)’이다. 박 교수는 “박사 학위 논문 쓸 때처럼 테니스 치면서 영문 서적 출간 스트레스를 이겨냈다”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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