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괴물’
“현서야. 너 때문에 가족이 다 모였구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현서의 할아버지 박희봉(변희봉)은 영정 사진들이 쭉 놓여 있는 합동분향소에서 그렇게 말한다. 한강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게 현서(고아성)가 잡혀 가면서 그 비극 앞에 가족들이 모처럼 다 모였다. 밖으로만 나돌던 운동권 출신의 남일(박해일)은 형 강두(송강호)가 함께 도망치다 현서의 손을 놓친 걸 탓하고, 국가대표 양궁 선수인 강두의 여동생 남주(배두나)는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며 영정 사진 앞에서 오열한다. 오랜만에 모였지만 티격태격하던 가족은 현서의 영정 사진 앞에서 참을 수 없는 슬픔을 토해내며 바닥을 뒹군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정부는 무심하다. 감염의 위험이 있다며 격리병동에 가두고, 괴물과 접촉했던 강두를 심지어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그런데 죽었다고 쉽게 예단했던 현서에게서 전화가 온다. 살려 달라고. 그 사실을 경찰에게 알리지만 경찰은 현서가 사망자 명단에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다. 그러자 강두가 말한다. “근데… 사망, 사망잔데요… 사망은 안 했어요.” 절박한 가족 앞에 경찰과 의사, 당국자들은 태평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들의 시간과 강두네 가족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16일은 세월호 참사 11주기였다. 어김없이 사고 해역을 찾은 유가족들은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봄이 왔다는 걸 알려주려 가져온 벚꽃에 노란 리본을 매달며 “잊지 않겠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목포 신항에서 열린 기억식에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도 참여해 서로를 위로했다. 사망자이지만 사망은 안 했다는 강두의 말이 새삼스럽다. 유가족들의 멈춰진 시간과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려서다. 올봄에는 벚꽃을 시샘이라도 하듯 때아닌 눈이 내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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