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기쁨이 곧 영혼의 행복[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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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인간의 오감 중 행복과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접속되는 감각이 미각과 청각이다.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고, 귀에 아름다운 음악이 들어올 때 우리는 곧장 행복과 평화를 얻는다. 특히 미각은 우리의 몸과 아주 깊이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 살맛이 날 때는 먹고 싶은 음식도 많지만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입맛부터 떨어진다. 잘 사는 것은 잘 먹는 것이고 잘 먹어야 잘 살 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도 말하지 않았던가.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책에서는 그저 먹을 것이라고 했지만 인간이 어디 그리 간단하던가. 기름을 먹는 기계가 아닌 이상 인간은 한 번씩 각별하게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 기름지고 풍성한 식탁을 원한다.

어디에선가 다이닝 행사가 열린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신청한다. 성대하지 않아도 멋진 공간과 맛있는 음식이 있는 자리라면 일정을 확인할 때부터 이미 행복해져 시간을 내고야 만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점이나 선이 아닌 면으로 기억된다. 다채로운 빛깔과 질감이 있는. 볕 쨍쨍했던 해남 유선관에서의 아침, 아이스와인 페스티벌 기간 중 캐나다 오타와에서 경험한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주, 화창했던 어느 봄날 친구들과 인왕산에서 맛봤던 따듯한 차와 김밥…. 맛있는 음식이 있는 시공간은 일상에서 누리는 건강한 쾌락이 아닐까 싶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헤리티지 만찬’도 그런 구애의 마음으로 다녀온 자리였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60주년을 축하하며 대극장 로비를 만찬회장으로 바꿨다.

달뜬 분위기 속에 수십 m 길이의 식탁이 차려졌고 그 위로 색색의 꽃이 올라갔다. 식탁을 책임진 요리사는 스타 셰프 최현석이었는데, 생각보다도 키가 더 컸다. 메뉴는 삼색나물과 된장호떡으로 구성한 주전부리, 졸인 무가 너무 맛있었던 캐비아 무조림, 그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봉골레 수제비, 이탈리안과 한식이 한 접시에 함께 있던 갈비찜 리소토, 그리고 간장과 된장, 고추장으로 맛을 낸 세 가지 장 디저트. 앉아서 보는 로비 천장은 신전처럼 높았고 어둠이 내린 광화문대로에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연등이 펄럭이고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이 이런 미식 이벤트를 연 것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는 이병엽 건축가를 포함한 크리에이티브 집단이 ‘밤참’이란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회관 로비를 호랑이굴로 상정하고 춤이 있는 퍼포먼스와 미식을 맛있게도 버무린 무대. 로비에 있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 제목도 마침 ‘호랑이는 살아있다’여서 면면이 야성적이고, 강렬하며, 매혹적이었다. 마치 한밤중에 맞닥뜨린 호랑이의 눈처럼.

어떤 공간을 사랑하려면 그곳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 디테일과 온기가 살아나 들어온다. 그리고 누군가를 오래 머무르게 하는 쾌락적 방법 중 하나는 미식이다. 이런 이벤트뿐인가. 내 일상과 식탁에서도 음식에 가중치를 부여하면 순간순간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 솟아난다. 육체의 기쁨이 곧 영혼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던 조르바의 하루처럼.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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