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완벽주의자'와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일궈낸 완전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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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완벽주의자,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

음반사에 근무하던 시절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레코딩 엔지니어였던 사람과 <베토벤 교향곡 7번(Beethoven's Symphony No. 7 in A major, Op.92)>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어떤 버전의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최고로 꼽을지 궁금했다. 그때까지 나는 카라얀(Herbert von Karajan)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1976년 앨범과,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1990년 앨범을 자주 들었던 터라 좋은 연주의 기준이 두 앨범에 맞춰져 있었다.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음반들은 80-90점 정도의 연주와 레코딩이라 생각한다. 그가 대단한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일정한 수준의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적어도 <베토벤 교향곡 7번>에 있어서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그보다 더 좋은 소리를 이끌어냈다”고 말했었다.

세계적인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1930-2004)는 카라얀이 인정한 천재였다. 1970-80년대 전 세계 최고의 포디움을 주름잡던 그는 공연을 많이 하거나 여러 음반을 남기지 않았고, 미디어에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만족하는 수준의 소리가 나올 때까지 관현악단을 끊임없이 연습시키는 '은둔형 완벽주의자'였다. 연주뿐 아니라 레코딩 환경, 사진·영상 촬영 등 그가 참여하는 모든 환경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 / 제공. 유니버설 뮤직

카를로스 클라이버 / 제공. 유니버설 뮤직

그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 음악 감독과 지휘자로 유명한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의 아들이었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금수저 음악가였기에 아쉬움과 부족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의 음악적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았기 때문에 20대부터 세계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완전무결한 <베토벤 교향곡 7번>

<베토벤 교향곡 7번>은 1811년 말에 착수해 1812년 중반에 완성한 교향곡이다. 1악장 포코 소스테누토, 2악장 알레그레토, 3악장 프레스토, 4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로 구성된 이 교향곡은 전형적인 고전 시대 2관 편성을 따르며 느린 악장이 없고, 리듬 위주의 곡상이 주를 이룬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1977년에 레코딩한다. 클래식 업계에서 끊임없는 불화를 낳았던 그가 1973년 DG와 계약한 후에 발표한 앨범이다. 당시 DG는 레퍼토리 선정에서 클라이버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좋은 대우와 조건 속에서 녹음할 수 있었던 앨범이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7번>  / 제공. 유니버설 뮤직

카를로스 클라이버-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7번> / 제공. 유니버설 뮤직

1악장 포코 소스테누토의 서주에서 관악기들이 몸을 푼다.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바순으로 이어지는 현악기들이 하나둘씩 존재감을 알리는 게 익살스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서주 이후에 휘몰아치는 주제부는 충만한 감정을 선사한다. 즐거움과 환희의 교향곡으로 관객들을 인도하듯 관현악기가 몰아친다.

2악장 알레그레토는 현악기의 세례다.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주제부를 화려하게 수놓고, 운율처럼 정교하게 리듬을 맞춘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은 주제와 대응하는 대선율이 결합되어 대서사시처럼 공간에 펼쳐진다.

3악장 프레스토는 악기들이 서로 이어달리기하듯 소리의 계단을 올라간다. 앨범에서 빈 필의 스케일과 스타일이 모두 살아나는 악장이 2악장과 3악장이라고 생각한다. 4악장 엘레그로 콘 브리오는 분에 넘치는 흥을 절제 없이 마구 발산하는 게 매력이다. 클라이버와 빈 필은 그 힘에 우아한 멋을 곁들여 프레이징을 이어간다.

이 앨범은 베토벤 작품 중에서 환희와 낙관적인 분위기가 가장 충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흥을 조절하고 분배해 감정의 스토리텔링을 잘 구성해 나가느냐가 이 교향곡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최고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만남으로 일궈낸 <베토벤 교향곡 7번>은 그 완성도의 기준이 이 앨범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7번> LP / 사진. ⓒ 이진섭

카를로스 클라이버-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7번> LP / 사진. ⓒ 이진섭

악기들이 생생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섬세한 터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능수능란한 지휘로 악기를 통제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 그리고 악장 사이에 곁들인 침묵마저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앨범은 시대를 넘나드는 클래식 명반으로 항상 등장한다. 기회가 된다면 언급한 카라얀과 솔티 버전의 <베토벤 교향곡 7번>과 비교하며 들어보길 권한다.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 카를로스 클라이버-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토벤 교향곡 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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