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이 바뀌면 글로벌 순위도 재편됩니다. 일본 소니가 디지털 혁명에 대응하지 못해 주도권을 잃고, 독일 자동차업계가 전기자동차 시대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아메리칸 팩토리’로 대변되는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 변화와 인공지능(AI) 패러다임 변화는 한국에 엄청난 위기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건우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사진)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산업 혁신에서 여러 번 뒤처졌지만 AI와 AX(AI 전환)로 시작되는 새로운 게임에서는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DGIST가 미래전략 연구 분야를 피지컬 AI, 휴먼 디지털 트윈, 퀀텀 센싱 3개 분야로 선정하고 글로벌 AX 협력 연구를 강화하는 등 대대적인 AX 혁신에 나섰다. 비수도권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집적지로 학교 밖인 대구 수성알파시티에 글로벌캠퍼스와 AX산업연구원도 새로 만든다. 글로벌 AX 연구개발과 실증을 주도하기 위한 전진 배치다.
과기원이 AI를 활용한 초혁신 경제전환의 ‘권역별 거점’으로 부상하면서 DGIST의 도전도 힘을 받게 됐다. 지난달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대 과기원장과의 조찬에서 이런 역할을 주문하면서다. DGIST는 지난달 22일 대구시가 전국 4대 AI 거점으로 지정되고 5510억원 규모의 지역 거점 AX 혁신 기술개발 사업에 선정되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총장은 “피지컬 AI, 휴먼 디지털 트윈, 퀀텀 센싱은 제조, 헬스케어, 정밀 의료, 자율주행 등 산업 전반에서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기술”이라며 “DGIST가 글로벌 연구 허브로 성장하는 데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DGIST는 AI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세계 최대 학술 출판사 중 하나인 엘스비어가 제공하는 사이발(SciVal)의 논문 영향력 지수(FWCI)에서 AI 분야 국내 2위, 로보랭킹에서는 피지컬 AI 분야 국내 4위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총장은 특히 AX 분야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AI는 이미 미국과 중국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우리의 산업기술과 축적된 경험 즉 도메인 지식(domain knowledge)과 그간 축적한 데이터에 AI를 접목하는 AX에서는 충분히 겨뤄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에 들어가 공장을 짓거나 국내에서 제조 기업을 영위할 때 필요한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력난이 더 심한 지방은 더 절박하게 이런 기술 개발에 앞장서야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값싼 노동력으로 전 세계 생산 거점으로 성장한 중국조차 가장 먼저 생산 현장을 휴머노이드로 다 바꾸겠다고 나섰다”며 “코리안 팩토리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총장은 취임 후 구미에 공학전문대학원을 만들고 오는 11월에는 대구에 기술경영대학원을 개원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프로그램을 가져와 MBA와 AI 기반 경영과학, 기술혁신 경영 등을 가르쳐 학생들은 2개 학위를 받는다. 21일부터 25일까지 세계 공학리더 800명이 참여하는 세계공학교육포럼과 공과대학장 세계대회도 대구에서 연다. 이 총장은 “DGIST는 개인의 생체정보를 가상공간에 복제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체현상을 예측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휴먼 디지털 트윈에도 연구자원을 집중할 계획”이라며 “개인 맞춤형 정밀 의료와 신약 및 의료기기산업의 혁신에도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