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이재명 물러나고, 한덕수는 윤석열 단절해야

1 day ago 4

李 유죄에 “대선 개입” 반발하지만
사법부가 방기했던 의무 이행한 것
국힘은 더 무릎 꿇고, 한덕수는
尹 단절하고 경제 실력 입증해야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의 유죄를 확정한 것은 지연됐던 사법정의의 뒤늦은 실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부당한 대선 개입”이라고 반발하지만 실제로는 방기돼 온 의무를 뒤늦게나마 이행한 것이 진실이다.

민주당이 순리와 법치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즉각 후보 교체에 나서야 한다. 만약 항소심 판결이 6월 3일 투표일 이전에 나오지 않아 이 후보가 그대로 출마한 상태에서 당선된다면 그 후 벌어질 혼란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모든 선거는 통합의 의미가 있다. 투표일 직전까지는 서로 다투지만 다수결 원칙에 의해 모두가 승복해 하나가 되는 절차다. 그런데 유죄가 사실상 확정된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투표일 다음 날부터 임기 끝날 때까지 합법성과 인정 여부를 놓고 온 나라가 갈라질 것이다.

물론 당위론이 아니라 현실을 놓고 볼 때 민주당이 그런 정당한 순리를 따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히려 한 달간 대법원을 포함한 대한민국 시스템을 겨냥한 기득권 타도 공세를 통해 좌파 결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재명 출마 강행, 사퇴 어느 쪽이든 판세는 국민의힘이 희희낙락할 상황이 아니다.

유죄 확정으로 중도층은 흔들리겠지만 위기의식을 느낀 좌파 조직들과 특정 지역 지지세 결집의 강도가 몇 배 강해질 공산이 크다. 만약 민주당이 다른 후보를 내세울 경우 이재명보다 더 강한 중도 확장력을 보일 수 있다.국힘은 더욱 백배사죄하는 마음으로 무릎 꿇은 자세로 선거에 임해야 하는데, 이재명 유죄로 인해 국힘 내부의 다툼은 더 심해지고, 한덕수 전 총리와 국힘 후보 간의 단일화도 더 산고(産苦)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처럼 지리멸렬하면 이재명이든 대타든 국힘에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경선과정을 보라. IMF 이후 최대 위기라는 경제·통상 파고를 어떻게 넘을지가 아니라 찬탄 반탄 윤석열을 놓고 이전투구했다. 좌파가 어떻하든 끄집어내려 안간힘 쓰는 과거완료형 이슈를 스스로 재부각시킨 것이다.

뜬금없어 보이는 한덕수 현상은 그래서 생긴 거다. 한덕수 출마에 좌파는 경기(驚氣·‘경끼’)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형사 처벌” “매국노” 등등 저주가 쏟아진다.

그들이 저주를 퍼붓는 이유를 알려면 한덕수라는 이름 대신에 윤 정권에서 총리 후보로 거론됐던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넣어보면 된다. 예를 들어 출마하려는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 김기현 권영세 등일 경우에도 민주당은 지금처럼 신경질적 반응을 보일까. 좌파의 저주는 역설적으로 한덕수 카드의 경쟁력을 가늠케 해준다.

물론 한 전 총리의 출마를 보는 시각에는 긍정·부정, 찬반이 양립한다. 부정론을 요약하면 대략 세 가지다. ①내란 세력이다 ②심판이 선수로 나간다 ③국가 위기를 관리해야 할 권한대행의 책임 방기다.

따져 보자. 먼저 ①번. 한덕수가 실패한 윤석열 정권의 총리였으며 계엄을 막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폐족(廢族)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반론도 가능하다. 한 전 총리가 계엄에 반대했음은 국무회의 참석자들의 증언과 헌재 심판 과정에서 명확히 밝혀졌다.

실패한 정부의 총리를 지냈다는 점은 한덕수가 벗기 힘든 약점이다. 하지만 그를 윤 정권 2인자라고 비난하는 민주당도 내심 씁쓸할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총리가 어떤 자리인지, 더군다나 윤석열은 취임이후 거의 모든 주요 정책을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였으며 국정 1, 2인자 권력은 윤 부부가 독점해 왔음을 민주당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 전 총리가 계엄 사태 당시 사표를 던지거나 몸을 던져 막지 못했다는 점은 한계고 멍에다.

②번, 즉 심판이 선수로 뛴다는 비난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최근 “선거관리는 선관위가 한다”며 심판은 선관위임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투표일 지정 등 행정적 절차의 수행자일 뿐이라는 뜻이다.

③번, 즉 “위기관리를 책임져야 할 중책을 버렸다”는 민주당의 비판은 그런 자리를 식은 밥 팽개치듯 석 달간 직무정지시킨 게 자신들이라는 점에서 퇴색된다.

한 전 총리의 앞에 놓인 최대의 과제는 윤석열을 완전히 떨쳐내는 것이다. 부부 모두 감옥행 위기에 처한 윤 부부는 어떡하든 지분을 챙기려 손을 뻗칠 것이다. 물론 윤 부부가 숟가락을 얹으려고 시도한다는 것과 한덕수가 응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최근 윤석열의 최고위급 참모가 한덕수를 돕겠다며 마포에 사무실을 차리려 하자 한 전 총리가 격노하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한덕수 출마론은 시작부터 윤석열과는 무관하게 이뤄져 왔다. 국힘 의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형성됐고 그 바탕에는 보수 지지자들 내부의 이심전심 여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는 사실·진실에만 기반해 진행되는 세계가 아니다. 좌파는 ‘윤석열 아바타’ ‘친윤 후보’ 프레임 공세의 강도를 높일 것이다.

한 전 총리가 강단 있게 윤석열을 단절하고 단죄의 의지를 밝힐 수 있을지가 첫 시험대다. 만약 길거리 몇십만 표에 미련을 가지면 결국 전체를 잃게 된다.

또한 경제·통상 전문가로서의 실력이 실패한 정부의 총리라는 핸디캡을 상쇄할 수준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두 차례 총리와 수석 등 고위직에서 여러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를 근거리에서 지켜보며 얻었을 지혜와 경륜에 대한 기대는 동시에 관료주의, 현실 순응주의에 대한 우려와 병존한다.

김문수 한동훈 후보도 미래를 놓고 겨뤄야 한다. 보수정당의 최대 강점은 경제다. 경제를 주제로 국민을 유혹할 수 있는 시기에 이를 스스로 걷어차며 스스로의 눈을 찌르는 바보짓을 이어가면 안 된다.

윤석열 작(作) 계엄 광극의 어부지리로 결승점 직전까지 다다랐던 이재명의 질주는 사법정의에 의해 일단 멈춰 섰다. 한덕수의 합류로 보수진영 판세도 요동치고 있다. 반전(反轉)의 연속인 한국 정치극은 항상 새옹지마로 귀결된다는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이기홍 칼럼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고양이 눈

    고양이 눈

  • 데스크가 만난 사람

    데스크가 만난 사람

  • 따만사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