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인에 자유를 달라… 귀국은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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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영화제작 20년 금지-수감-보석… 파나히 이란 감독,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이란정부 통제 맞선 상징적 인물
영화 ‘잇 워스…’ 감시 피해 제작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모두 받아

24일(현지 시간) 제78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이 상은) 나를 위한 게 아니다. 모든 이란 제작자가 (표현의 자유를 지니고) 활동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칸=AP 뉴시스

24일(현지 시간) 제78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이 상은) 나를 위한 게 아니다. 모든 이란 제작자가 (표현의 자유를 지니고) 활동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칸=AP 뉴시스
“누구도 우리가 뭘 입어야 하는지,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강요할 수 없습니다.”(자파르 파나히 이란 감독)

24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제78회 칸국제영화제가 폐막식과 함께 막을 내렸다.

영화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It Was Just An Accident)’로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65)은 단상 위에 올라 자국의 여성 복장 규정 등 사회 규범을 에둘러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는 객석을 가득 채운 박수와 환호 속에서 차분하게 입을 열고 “국내외 모든 이란인은 모든 문제와 차이를 제쳐 두고 힘을 합쳐야 한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자유”라고 했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 사회에서 오랫동안 검열과 통제에 맞서 온 상징적 인물이다. 2010년 반정부 시위에 연루돼 20년 동안 영화 제작과 출국을 금지당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몰래 영화를 찍어 해외 영화제에 출품해 왔다. 2022년 다시 수감됐다가 2023년 단식 투쟁 끝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파나히 감독이 석방 뒤 처음으로 만든 장편 ‘잇 워스 저스트 언 액시던트’는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한 경찰과 닮은 이를 길에서 마주친 전직 정치범이 겪는 내면의 갈등을 그렸다. 용서와 복수 사이에서 흔들리는 심리를 통해 이란 사회의 억압 구조를 조명한다. 영화는 그가 수감 중에 다른 재소자에게 들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당국의 감시를 피해 은밀히 촬영됐지만, 제작 과정에서 출연 배우와 일부 스태프가 당국에 소환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수상 직후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이 상은 지금 활동할 수 없는 이란의 모든 영화 제작자들을 위한 것이다. 내일 귀국할 예정이며 전혀 두렵지 않다”며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돌아갔을 것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13일 개막해 11일간의 일정을 마친 ‘세계 영화인의 축제’ 칸국제영화제가 이처럼 황금종려상을 통해 내린 선택은 ‘예술과 표현의 자유’였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예술은 우리의 가장 소중하고 살아 있는 부분인 창의적 에너지를 움직인다”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예술이 계속 존속하고 번창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파나히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모두 수상한 다섯 번째 감독이 됐다. 그는 2000년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써클’)을, 2015년 독일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택시’)을 수상했다. 이전까지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받은 건 장뤼크 고다르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버트 올트먼, 앙리 조르주 클루조까지 4명이었다.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트리에르의 ‘센티멘털 밸류’는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상은 프랑스·스페인 합작 영화 ‘시라트’(올리베르 라세 감독)와 독일 영화 ‘사운드 오브 폴링’(마샤 실린스키 감독)에 공동 수여됐다.

감독상은 브라질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시크릿 에이전트’, 남우주연상은 이 영화의 주연 배우 바그네르 모라에게 돌아갔다. 여우주연상은 프랑스 신예 배우 나디아 멜리티(23)가 영화 ‘더 리틀 시스터’로 수상했다.

올해 칸영화제는 영화보다 현실적인 이슈가 주목받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로버트 드니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국영화 관세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폐막 당일엔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칸 본부가 약 5시간 정전됐다”며 “영화제가 ‘현실의 드라마’로 얼룩졌다”고 평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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