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철강산업에도 특별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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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철강산업에도 특별법이 필요하다

보름 전, 경기도 화성 남양도서관의 볕 잘 드는 곳에 자그마한 공적비 하나가 세워졌다. 주인공은 우정 김재관 박사(1933~2017). 독일 뮌헨공대에서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밟던 1964년, 독일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발적으로 만든 ‘종합제철소 건립 방안’ 보고서를 건넨 대한민국 산업화의 설계자이자, 3년 뒤 ‘대한민국 1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포항제철소의 밑그림을 그린 당대 최고의 철강 전문가였다. 공적비는 “대한민국이 김 박사에게 큰 빚을 졌다”는 걸 뒤늦게 안 한 재단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의 고향에 세운 것이었다.

그때 김 박사가 그 보고서를 만들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이 종합제철소를 갈망하지 않았다면, 박태준 회장이 뚝심 있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터다. 포스코가 1970~1980년대 국제 철강 시세보다 30~40% 싼값에 양질의 철강을 공급한 덕분에 조선, 자동차, 가전산업이 태동할 수 있었다.

포스코가 지금 비틀거린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국내외 경기 침체에 내몰린 상황에서 미국의 25% ‘관세 폭탄’까지 더해져서다. 본거지인 포항제철소는 작년에 이어 올 들어서도 적자 행진이다. 지난해 효율이 떨어지는 공장 2개를 닫았는데도 그렇다. 그나마 잘 팔리는 자동차용 강판이 주력인 광양제철소 덕분에 근근이 버틴다. 2021년 9조원이 넘은 포스코홀딩스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2조17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올 1분기에도 1년 전보다 2.6% 감소했다.

투자할 곳은 산더미인데 곳간은 비어가는 상황이다. 미국 관세 폭탄에 대응해 현대제철이 루이지애나에 짓는 일관제철소에도 목돈을 넣어야 하고, 인도 제철소 건립에도 조단위 투자를 해야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진짜 큰 투자는 따로 있다. 수소환원제철이다. 관련 기술을 손에 넣는 데만 수조원,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고로 11기를 모두 바꾸는 데는 68조5000억원이 드는 거대 프로젝트다.

수소환원제철의 원리는 단순하다. 철광석은 철(Fe)과 산소(O)가 결합한 형태인데, 질 좋은 철을 얻으려면 산소를 깨끗이 떼어내야 한다. 고로 방식은 석탄(탄소·C)을 환원제로 투입해 산소를 분리한다. 탄소가 산소를 만나니 이산화탄소(C)가 나온다. 철강을 1t 생산하는 데 2.3t이나 배출된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H)를 환원제로 쓴다. 그래서 물(H)만 나온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탄소 제로 기술이지만, ‘돈 먹는 하마’라는 게 문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17%를 차지하는 ‘최악의 기후 악당’을 내버려 두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 제품을 쓴 기업도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유럽연합(EU)과 미국에 수출할 때 탄소세를 내야 한다. 볼트부터 자동차까지 다 해당된다. 이런 점에서 수소환원제철은 포스코를 넘어 대한민국 모든 제조기업을 위한 국가적 과제다. 친환경 철강 수요는 무조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잘 가꾸면 우리의 새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친환경 제철사업이 반도체처럼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이 때문이다. EU(23조원) 미국(8조5000억원) 일본(7조원) 등 선진국마다 탄소저감 프로젝트에 나랏돈을 쏟아붓는다. 우리 정부도 상용화 기술 확보에 340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철강은 반도체만큼이나 중요한 산업이다. 다른 산업에 영향을 주는 전방 연쇄 효과가 가장 큰 업종이란 점에서 그렇다. 코너에 몰린 철강산업에도 반도체처럼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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