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벼락을 맞는 일은 드문 일도, 크게 위험한 일도 아니다. 비행기 한 대가 1년에 평균 2번, 시간으로는 5000∼6000시간마다 한 번씩 벼락을 맞는다는 미국 보잉사의 통계도 있다. 하지만 한동안 항공사들은 이 번개에 민감했다. 특히 에어버스의 A350, 보잉의 B787 등 최신형 항공기를 다수 도입해 운영하던 항공사들의 마음고생이 있었다. 최신형인 이들 비행기 기종이 구형 기종들보다 번개에 더 취약했기 때문이다.
두 비행기의 공통점은 동체에 적극적으로 사용된 신소재다. 비행기 강성을 더 높이면서 무게까지 줄일 수 있는 탄소복합소재를 50% 이상 활용해 동체를 제작했다.
문제는 전기 전도성이 낮다는 점이다. 기존 비행기 동체는 금속 소재로 만들어져 번개가 비행기에 맞아도 자연스레 꼬리 쪽으로 흘러 나갔고, 탑승객이나 전자장비도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형 비행기는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비행기 제조사들은 구리로 된 촘촘한 철망을 동체 전체에 깔아 문제를 해결했다. 이 구리 철망을 통해 전기가 흐르기 때문에 번개를 맞더라도 내부에 피해를 주지 않고 비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또 생겼다. 수리가 어려웠던 것이다. 금속 동체 비행기는 번개를 맞으면 해당 부분이 검게 그을리거나 강한 번개를 맞아 균열이 생기더라도 상대적으로 손쉽게 진단하고 빠르게 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소재 동체 비행기가 번개를 맞아 균열이 생길 경우 수리가 쉽지 않았다. 작은 균열이라면 알루미늄 소재 테이프로 긴급 수리를 하거나 충치 치료에도 활용하는 레진으로 임시 보수하는 방법을 제조사에서 권장했다. 하지만 균열 부위가 일정 크기나 개수를 넘어선다면 동체 일부분을 아예 새로 갈아야 했다.실제로 2017년 영국 런던에서 출발해 인도 첸나이로 가던 보잉 787 영국항공 비행기가 인도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번개를 맞은 적이 있다. 비행기는 인도에 무사히 착륙했지만, 진단 결과 동체 40여 곳에 번개로 인한 구멍이 난 사실이 확인됐다. 이 비행기로 영국으로 다시 가는 비행편은 결항했고, 결국 인도에서 한동안 수리를 받은 뒤 돌아가야 했다.
한국에서도 항공사들이 동남아시아에 신소재를 사용한 비행기를 투입하지 않은 적이 있다. 항공사가 밝히진 않았지만 항공업계는 같은 이유일 것으로 추정했다. 동남아를 비롯한 적도 내륙 지역은 번개가 자주 발생한다. 번개는 소나기 구름 같은 적란운이 형성될 때 함께 발생할 확률이 높다. 적란운은 땅에서 가벼워진 따뜻한 공기가 하늘로 솟아오르다 높은 하늘에서 무거워 떨어지는 찬 공기와 뒤섞이면서 급격히 불안한 기류를 만들 때 생긴다. 동남아를 비롯한 적도 인근 땅은 쉽게 달아올라 적란운도, 난기류도, 번개도 그만큼 잦다.
물론 비행기들은 이 적란운을 피해 간다. 하지만 번개는 전압이 100만 V(볼트) 이상, 전류는 3만 A(암페어) 이상이다. 220V에 전류가 50mA(밀리암페어)만 흘러도 사람이 감전돼 위험하다. 그래서 번개는 적란운과 약 10km 떨어져서 날아가는 비행기에도 떨어질 수 있다.이원주 디지털뉴스팀장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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