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시험 성적표 앞에서, 성과평가 통보 메일 앞에서 그리고 선거나 재판 결과 뉴스를 접할 때 우리는 마음속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감정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 사회의 성숙도는 이런 결과의 수용성에서 드러난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개인의 성장을 이끌고 조직의 신뢰를 지키며 민주주의의 질서를 유지하는 사회적 미덕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법원 판결조차 진영 논리에 따라 수용 여부가 갈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치주의란 판결 내용이 마음에 들든 아니든 결과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판결을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 법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정치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민감한 영역이다. 선거 결과 불복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체제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선거란 승패를 떠나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룰에 대한 합의가 기본 전제조건이다. 패자의 책임 있는 수용이 있어야 정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심리적 함정은 ‘선택 편향’이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선택 편향은 특히 SNS와 유튜브 같은 알고리즘 기반 미디어 환경에서 더 강화된다.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콘텐츠만 노출되다 보니 반대되는 결과는 자연스럽게 ‘틀린 것’이 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상이 된다. 특정 기업 구조조정 발표가 나왔을 때 피해 당사자는 자신의 무능보다 조직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기사와 댓글을 훨씬 더 쉽게 수용한다.
선택 편향은 ‘불편한 진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적 전략이다. 그러나 이 편향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결과를 수용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힘’을 잃는다. 진실은 항상 복잡하고 때로는 불편하며 반드시 내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존재하진 않는다. 따라서 성숙한 수용성은 내가 선호하는 결과가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는 진실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에서 출발한다.
기업에서는 인사평가 때마다 결과를 두고 갈등이 일어난다. “내가 더 잘했는데” “상사가 나를 싫어해서 낮게 준 거야”라는 불만 등이 이어진다. 물론 평가의 공정성 문제는 제도적으로 지속해서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구성원 개개인의 수용성도 함께 길러져야 한다. 모 대기업은 평가 결과에 불만을 품은 직원이 퇴사 직전까지 상사를 고발하거나 조직 내부망에 비판글을 올리는 일이 반복되자 리더십 교육과 함께 ‘피드백 수용 역량 향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프로그램을 이수한 직원들이 다음 해 평가 면담에서 훨씬 성숙하게 피드백을 받아들이며 조직 분위기가 개선된 사례도 있다.
우리는 종종 ‘결과가 잘못됐다’는 말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싫다’는 정서적 저항이 숨어 있다. 그러나 사회가, 조직이, 개인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결과를 받아들이는 내면의 질서’다. 오늘날처럼 각자의 진영 논리와 알고리즘이 선택적으로 진실을 제시하는 시대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 편향에서 벗어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더 중요하다.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길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것은 승자의 말이 아니라 패자의 침묵 속에서 길어 올린 품격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기는 법’보다 ‘지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 지는 법을 아는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이길 준비가 돼 있는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