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젊은 피아니스트의 바흐는 눈부시게 황홀하고,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이달 초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임윤찬(21)을 향해 남긴 찬사다. 지난해 그가 집중적으로 탐구한 작품이 쇼팽의 에튀드였다면, 올해 주인공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 워싱턴DC의 케네디 센터,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 등 그의 주요 공연 레퍼토리에서 빠짐없이 등장한다.
전곡 연주에 70여 분가량이 소요되는 이 작품은 바흐 필생의 역작으로 꼽힌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과 함께 ‘피아노의 성서’로 불릴 만큼 중요한 작품이지만, 누구에게나 연주를 허용하는 곡은 아니다. 주제 선율인 아리아와 이를 변주한 30개의 짧은 곡으로 이뤄져 있기에 기본기와 음악성이 부실하면 자칫 지루한 선율 반복으로 들리기 쉽고, 반대로 감정 표현이 조금이라도 과해지면 지저분한 진행으로 본연의 아름다움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의 글렌 굴드’로 불리는 명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건반 음악 중에서도 고도의 기교와 예술성을 (전부) 요하는 ‘비르투오소적’인 작품”이라며 “피아니스트의 약점과 장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많은 피아니스트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난곡(難曲)인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쓴 목적은 불면증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잠을 선물하기 위한 것이었다.
음악학자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의 바흐 전기에 따르면 평소 그와 가까이 지내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평소 잠에 쉽게 들지 못하고, 아예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아 골머리를 앓았다. 이에 하프시코드 연주자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에게 매일 밤 수면을 유도할 만한 곡을 연주하도록 했는데, 큰 성과가 없자 바흐에게 숙면을 도와주는 작품을 써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음악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강한 반복성으로 취침을 유도하는 작품에 카이저링크 백작은 매우 흡족해했고,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골드베르크에게 이 곡의 연주를 청했다고 한다. 바흐에겐 금화를 가득 담은 금잔을 선물하는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작곡 일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곡이 완성된 해인 1741년 골드베르크의 나이는 불과 열네 살이었기에 이토록 어려운 대작을 연주하지 못했을 것이며, 귀족의 전속 음악가로 활동하기에도 지나치게 어리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특정 인물의 의뢰로 만들어진 작품의 악보 표지엔 헌정할 대상의 성명을 기재하는데,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엔 카이저링크 백작의 이름이 적히지 않은 것도 신빙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소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작곡 일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바흐가 초판본에 남긴 글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삶에 지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위한, 고통을 겪는 누군가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한 작품이란 걸 우회적으로 말해준다. ‘음악 애호가들의 영혼을 고양하기 위해 작곡.’ 악보에 새길 수 있는 가장 짧지만 강한 한 문장으로.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