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앞에 앉은 강자연 가온 솔로이스츠 대표가 건반 위 손가락을 움직이자, 클라리넷을 든 세 명의 연주자가 일제히 호흡을 맞추며 곡을 이어받는다. 연주곡은 윌리엄 볼컴의 ‘우아한 유령’. 재즈의 뿌리 격인 래그타임 특유의 경쾌한 리듬에 연주자들의 흥이 한껏 올라간다. 그들의 시선은 바닥을 향하거나 손끝을 따라 허공에 머물지만, 눈빛이 마주치지 않아도 연주는 놀라울 만큼 유기적이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로데아트센터에서 만난 강 대표와 강태유, 곽도형, 한만재 클라리넷 연주자는 2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가온 솔로이스츠의 제5회 정기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었다. 연주자 세 명은 시각 또는 발달 장애를 가졌지만 어려서부터 즐겨 듣던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싶다는 열망에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가온 솔로이스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통합 실내악 연주단체다. 2021년 김유영 음악감독과 자폐 비올리스트 백승희 연주자, 뇌병변 장애자녀를 둔 음악인 강 대표가 만나 합을 맞춰본 것을 계기로 창단됐다. 창단 이후 다섯 차례의 정기연주회와 각종 콘서트 출연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맞아 열린 제5회 정기연주회는 HS효성이 후원했다.
장애·비장애인이 함께하지만 둘 사이의 역할을 엄격하게 나누지 않는다. 오로지 공연을 듣는 관객의 입장에서, 자신의 시간과 돈을 쓰기에 아깝지 않은 공연이 될 수 있도록 예술성에 방점을 두며 공연을 준비한다. 강 대표는 “이번 공연에는 장애 연주자 15명, 비장애 연주자 6명이 참여한다”며 “리드를 시각장애인 연주자가 맡고, 다른 연주자들이 따라가는 구도”라고 설명했다. 설립 초창기에는 장애인 옆에 비장애인 연주자가 함께하는 ‘카운터파트’ 구도를 이뤘지만, 이제는 장애인 연주자가 혼자서도 파트를 맡아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20일 정기연주회의 제목은 ‘기쁨의 노래’였다. 코렐리, 베토벤, 드보르자크, 차이콥스키의 명곡과 피아니스트 김기경의 편곡을 거친 볼컴, 홀스트 등 20세기 대표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세 클라리넷 연주자가 선보인 ‘우아한 유령’ 무대에는 청각장애인 고아라 발레리나의 무용이 곁들여져 의미를 더했다.
가온 솔로이스츠는 수준 높은 전문 예술단체로서 조직과 장애인 모두가 자생할 수 있는 모델을 지향한다. 공공 기금과 기업 후원, 티켓 수익을 통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지분투자형 자회사 형태의 디어에버를 설립해 성인 장애 연주자 11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기업들은 디어에버에 지분을 투자해 장애인을 간접적으로 고용할 수 있다.
강 대표는 “상당수 장애인 보호자의 꿈이 ‘하루라도 내 아이보다 오래 사는 것’일 정도로 장애인 자립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자립을 위해 필요한 직업, 그리고 그들이 속할 사회 공동체의 역할을 가온 솔로이스츠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진출도 계획 중이다. 이미 외국 대사관과 해외 유명 음악가 등으로부터 협업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강 대표는 “연주자들의 실력이 자라는 만큼 조만간 K팝처럼 장애 예술에도 ‘K’를 붙일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