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선주자들의 ‘인공지능(AI) 3대 강국론’에 빠지지 않는 방책이 있다.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장치(GPU) 확보다. 5만 개, 10만 개 단위의 구체적 물량까지 제시하고 있다. GPU는 AI에 각종 데이터와 자료를 학습시키는 데 없어선 안 될 장치다. 고성능 칩셋은 장당 5000만원을 넘는 고가여서 10만 개를 사려면 5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빅테크들의 입도선매로 올해 계약분은 사실상 마감된 상태다. 오픈AI 대주주 마이크로소프트는 15만 개를 확보해 놓고도 추가 주문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가 뒤늦게 돈 보따리를 싸 들고 가도 5만 개 같은 규모는 애초에 불가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앞세워 엔비디아 본사를 여섯 차례나 방문한 끝에 계약한 물량이 10만 개 남짓이라고 한다. 현재 국내에 반입된 물량 2000여 개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우리나라가 넌덜머리 나는 정쟁을 벌이며 지리멸렬하는 동안 바깥세상은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편으로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과의 AI 격차는 엄청나다. 민간 단위의 투자 규모만 보더라도 100 대 1이 넘는다. 미국 공학도들이 1960년대 규칙 기반 AI에서 시작해 오늘날 수많은 정형·비정형 데이터를 학습하는 생성형 AI로 발전시키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불러들일 과거가 없으니 현재는 그저 미몽과 혼돈일 뿐이다. AI 기술은 모방과 추격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진적이고 전복적이었기에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이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GPU도 처음부터 AI 용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비디오게임용 반도체였다. 창업자 젠슨 황 역시 주목도가 낮았다. 2011년 방한한 그를 인터뷰한 언론은 한국경제신문이 유일했다. 그것도 당시 막내 기자가 취재 경험 삼아 맡은 것이었다.
‘3대 강국론’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챗GPT, 딥시크 같은 거대 AI 모델을 보유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모델을 모든 산업에 이식하겠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이재명 후보의 ‘전 국민 기본 AI’라는 구호까지 접하면 더 오리무중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AI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다.
실로 인류의 문명사적 전환이다. 청동기 시대가 철기 시대와 공존하지 못한 것처럼, 산업혁명이 봉건 시대를 갑자기 끝장낸 것처럼 앞선 문명은 기존 문명을 모조리 말살하고 대체해 나간다. 초지능과 동행·공생하지 않고서는 어떤 발전도 이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지고 있다.
3대 강국을 내건 후보들은 AI 시대 주 4일 근무의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본말착오적 지력부터 청산해야 한다. 신(新)문명은 게으른 민족과 국가에 결코 세례를 주지 않는다. 주 4일이 아니라 AI 전환이 먼저다. 우리는 선발 주자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 한국은 구글, 애플처럼 스마트폰 운영체제(OS)를 만들지 못했지만 반도체와 하드웨어로 디지털 전환 시대를 살아냈다. AI에는 이런 분업적 칸막이가 없다. 자율주행 로봇 소프트웨어가 모두 한 덩어리다. 상용화 구간에서 한 번 밀리면 만회가 어렵다. 그야말로 굴종과 예속의 길이다. 이런 나라에는 노동해방도 없다.
앞으로 2~3년 뒤면 AI가 인터넷처럼 모든 분야에 깔릴 것이다. 미국, 중국과의 돈(자본) 싸움은 승산이 없다. 남는 것은 사람과 시간이다. 또 주 52시간 얘기하려고 이렇게 서설을 깔았느냐는 이죽거림은 사양하겠다. 지금 자신들 입에 밥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는 인간들이 태반이다.
AI 강국으로 가는 길은 GPU 확보가 아니라 GPU와 밤새 씨름할 수 있는 사람에 달려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AI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해외 언론이 먼저 걱정하는 현실이다. 후보들은 나날이 줄어드는 이공계 박사 과정 학생들과 해외 탈출에 골몰하는 연구개발(R&D) 스튜디오의 현실을 직시하라. 인구·자원이 많은 나라는 좀 놀아도 된다. 글로벌 인재를 쓸어 담는 빅테크도 그렇다.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 연구원들만 땡 하고 칼퇴근이다. 이번 금요일 연차를 쓰면 내일부터 또 황금연휴다. AI 패배국에는 이런 워라밸이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