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한국 땅을 밟는다. 지난해 10월 경북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참석 이후 약 7개월 만의 방한이다. 나흘에 걸쳐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 총수를 비롯해 정보기술(IT) 및 게임사, 로봇 스타트업 관계자를 잇달아 만나며 촘촘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 삼겹살 회동부터 시구까지
이날 전세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젠슨 황 CEO의 첫 일정은 국내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서울 성수동의 한 삼겹살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과 만나 저녁 식사를 겸한 ‘제2의 깐부 회동’을 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선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 안정화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 등 피지컬 AI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7일에는 김택진 엔씨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국내 대형 게임사 경영진과의 회동이 예정돼 있다. 생성형 AI를 접목한 차세대 게임 기술 협력이 주로 다뤄질 전망이다. 같은 날 오후엔 평소 야구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온 젠슨 황 CEO가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두산 베어스 홈경기에서 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른다. 엔비디아 창립 연도인 1993년을 뜻하는 93번 유니폼을 입을 예정이다. 두산그룹 회장이자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 회장은 창립 연도(1896년)를 상징하는 96번을 달고 시타자로 나선다.
방한 마지막 날인 8일에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국내 AI 및 로봇 스타트업 대표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엔비디아 로봇 개발 플랫폼과의 시너지 방안을 모색한다. 서울대 AI연구원 및 로보틱스 연구소를 방문해 대학 연구진, 학생과 만나는 방안도 조율 중이다. 또 네이버, LG, 현대차 등 주요 기업 사옥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밖에 페이커(이상혁) 선수와의 깜짝 만남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 녹화도 예정돼 있다.
◇ 20년 게이밍 동맹 ‘피지컬 AI 파트너’로
이번 방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내 게임사와의 연쇄 회동이다.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핵심 고객인 한국 게임업계는 피지컬 AI 시대의 전략적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로봇과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려면 가상 세계에서의 반복 학습이 필수적인데, 게임사가 갖춘 3차원(3D) 공간 제어 기술과 물리엔진, 대규모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최적의 가상 훈련장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래프톤은 엔비디아의 AI 캐릭터 기술(ACE)을 활용해 이용자와 소통하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의 행동 모델로 확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씨도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바르코’를 기반으로 다져온 가상 시뮬레이션 역량을 산업 현장용 AI 과제에 적용하고 있어 엔비디아의 로봇 및 디지털트윈 전략과 완벽히 맞물린다는 평가다.
◇ ‘우군 확보’에서 ‘생태계 확장’으로
업계에선 젠슨 황 CEO가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한국을 찾은 것과 관련해 협력의 깊이와 영역이 작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방한 당시에는 세계적인 GPU 품귀 현상 속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챙기는 우군 요청의 성격이 짙었다.
이번 방한은 엔비디아가 미래 핵심 먹거리로 낙점한 피지컬 AI 지배력을 한국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프트웨어와 인프라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이제는 AI를 로봇, 자율주행차에 이식하는 플랫폼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협력의 외연이 LG, 네이버, 두산, 게임사 및 로봇 스타트업으로 대폭 넓어진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로보틱스와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제조 능력을 갖춘 한국 기업을 최적의 파트너로 낙점한 것”이라며 “방한을 계기로 국내 테크 및 제조산업 전반에 걸쳐 엔비디아 동맹이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채연/안정훈/강해령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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