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이 ‘강 대 강’ 국면으로 흘러가자 정유·석유화학 등 국내 에너지 업체들의 긴장감이 최고조가 됐다. ‘중국발 과잉생산’이란 악재에 고전하던 와중에 원유 가격 급등까지 만나 이중고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에너지 설비를 연신 타격하는 가운데 최악의 경우 원유 가격이 배럴당 130~150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15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 대비 4.94달러(7.26%) 상승한 배럴당 72.98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종가 기준 4개월 만의 최고치다. 브렌트유 8월 인도분 가격은 전장 대비 4.87달러(7.02%) 오른 74.23달러에 마감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연합체인 ‘OPEC+’가 수개월간 증산을 단행하자 60달러 선까지 떨어졌던 유가가 중동 지역 위기로 인해 다시 급등하는 모양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면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ING는 이보다 더 비관적인 배럴당 150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예측했다.
원유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자 국내 정유, 석유화학 업체들도 긴장하는 모양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상승하면 정유 업계의 경우 비싼 값이 제품을 팔 수 있어 단기적으로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분쟁이 장기화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정제유 가격이 단기간에 빠르게 상승하면서 수요 위축이 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발 과잉생산 등으로 국내 업체들의 제품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 속에 악재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이런 와중에 이스라엘이 이란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타격을 이어가면서 업계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남부 걸프해역에 있는 이란 최대 천연가스전인 사우스 파르스 정제시설, 이란 테헤란의 샤란 정유저장소와 샤르 레이 정유공장 등을 공격한 바 있다. 이란의 원유 생산 규모는 글로벌 5위(점유율 약 5.0%), 천연가스 생산은 글로벌 3위(점유율 약 5.6%)에 달하는데 이러한 공격이 계속되면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내 기업 중에는 전력 공급사인 한국남부발전이 에너지 수급 비상대책반을 긴급 가동해 상황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분쟁 발발 초기에는 불안 심리 때문에 유가가 급등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안정화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그럼에도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의 7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등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 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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