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럴당 60→45달러 낮춰 돈줄 조이기
트럼프 “러 제재엔 엄청난 비용 들어”
외신 “美, 휴전협상 중 푸틴 압박 부담”
EU, 유가불안 속 “美지지 필요” 눈치
1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비공개회의에서 일부 회원국들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현재 60달러에서 45달러로 낮추자는 EU 집행위원회의 제18차 대(對)러시아 제재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새 제재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EU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중동 위기와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교착 등으로 국가 간 입장 차이가 커지면서 단일대오를 이루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 트럼프 “대러 제재, 美에 엄청난 비용 들어” 러시아에 대한 신규 제재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EU 회원국들은 최근 국제 유가가 출렁이는 상황에서 추가 제재가 유가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는 상한선 인하를 지지하는 회원국 사이에서도 “미국이 지지하지 않는다면 실효성이 없는 만큼 EU도 만장일치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U가 새 제재를 시행하려면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하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에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시사했다. 그는 이날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유럽의 신규 대러 제재 요구에 동참할 것이냐’는 질문에 “유럽이 행동에 옮기는지를 우선 지켜보자”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어떤 나라에 제재를 가하면 미국에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며 “제재는 그저 문서에 서명하면 끝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수십억 달러가 들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압박하길 싫어하며, EU는 그런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실패해 왔다”고 16일 분석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이 대러 제재 때문에 방해받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 중동 정세 불안으로 러시아산 원유 제재 어려워져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는 2023년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과 EU가 주도해 G7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러시아산 원유의 국제 거래 가격을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제한하고, 그 이상으로 거래하려는 업체에는 유조선과 선박 보험 제공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세계 3위 산유국인 러시아는 ‘그림자 함대’를 동원해 중국과 인도 등에 원유를 우회적으로 공급하며 제재를 무력화해 왔다.이에 EU 집행위는 G7 정상회의를 닷새 앞둔 10일 가격 상한선을 배럴당 45달러로 더 내리는 추가 제재안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또한 신규 제재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EU는 이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과 국제사회가 동참하도록 설득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3일 새벽 시작된 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로 러시아산 원유는 물론이고 국제 유가가 전체적으로 출렁이면서 이런 공조 노력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만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면 유가는 더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블룸버그는 해설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최종 결정권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며 그가 EU의 대러 제재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전망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X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15일 전화로) 에너지 시장의 영향에 대한 긴밀한 협력의 필요성을 비롯해 여러 주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는 23일 EU 외교장관회의에서 제재 패키지 승인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스타머 총리는 17일 “푸틴 대통령의 전쟁 기계를 막겠다”며 신규 대러 경제 제재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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