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이름이 있다면… ‘사는 집’ 아니라 ‘살고 싶은 방식의 집’이 된다[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1 week ago 8

조선왕조는 4대문과 보신각에 사람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각각 담아 이름을 지었다. 백성들이 통치 이념을 일상에서 보고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중 숭례문(崇禮門·위쪽 사진 점선 원)에는 ‘예’를 담았다. 사진 출처 문화유산청

조선왕조는 4대문과 보신각에 사람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각각 담아 이름을 지었다. 백성들이 통치 이념을 일상에서 보고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중 숭례문(崇禮門·위쪽 사진 점선 원)에는 ‘예’를 담았다. 사진 출처 문화유산청
《집에 이름을 짓는다는 것

“집에 이름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할 수 있다. “당연히 있죠!”라며 아파트 브랜드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 브랜드는 해당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의 상표일 뿐 집 이름’은 아니다. 논어에서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스승님께서 정치를 하신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대답했다. 공자는 임금이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각 사회구성원이 그 이름에 부합되게 행동하는 것이 사회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했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또 정치의 시작에 이름 짓기가 바르지 않으면 말이 도리에 맞지 않고, 말이 도리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도리가 적용되지 않는 사회는 배려나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바른 이름, 즉 ‘정명(正名)’은 언어와 사물의 관계성을 뜻하며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사물의 참된 합을 이룰 수 없고 사회와 제도의 성공도 이룰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흔히 말하는 ‘명실상부(名實相符)’는 이름과 실제가 상호 부합하는 이상적 행위를 의미한다. 명실상부는 어느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 쓸 수 있는 사자성어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누구든 명실상부할 때 세상은 바르게 작동한다.

조선을 개국하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태조는 1394년 일 년간 경복궁을 건축하고 동시에 왕의 조상을 모시는 종묘, 땅과 곡식을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을 지었다. 이후 곧바로 1396년 1월 도성축조도감이라는 관청을 신설해 49일 동안 11만 명을 동원해서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부터 대학로에 있는 낙산, 목멱산(현재의 남산), 인왕산까지 연결하는 약 19km 규모의 도성을 쌓고 4대문과 4소문을 만들었다.

여기서 4대문은 통행을 위한 기능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궁궐은 나라의 중심을 상징하고 사대문은 동서남북의 방위로 국가의 영토 전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4대문의 이름을 짓는 것은 나라를 통치하는 이념을 세우는 일과 같았다. 남대문인 숭례문에 ‘예(禮)’, 동대문인 흥인지문에는 ‘인(仁)’, 서대문인 돈의문에는 ‘의(義)’, 북문인 숙정문에는 ‘지(智)’를 담은 이유다. 마지막으로 종로 한가운데는 보신각을 세워 유교의 마지막 덕목인 ‘신(信)’을 상징으로 세웠다. 정리해보면 4대문과 보신각은 다섯 가지 인간의 도리인 인의예지신을 각각의 문의 이름으로 삼고 이를 통해 백성들이 통치의 이념을 일상에서 보고 느끼도록 한 것이다.

한양도성의 4소문 중 자하문의 모습. ‘자하’는 자줏빛 노을이자 부처님의 몸에서 발산되는 상서로운 자금색 광채를 뜻한다. 사진 출처 문화유산청

한양도성의 4소문 중 자하문의 모습. ‘자하’는 자줏빛 노을이자 부처님의 몸에서 발산되는 상서로운 자금색 광채를 뜻한다. 사진 출처 문화유산청
경복궁을 지나 평창동으로 가는 터널 이름은 자하문 터널이다. 여기서 자하문은 한양도성의 4소문 중 북서쪽에 위치한 창의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하’는 자줏빛 노을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몸에서 발산되는 상서로운 자금색 광채도 ‘자하’라고 한다. 자줏빛 노을을 지나는 광경을 상상해보자. 마치 부처님의 기운과도 같이 성스러운 기운이 감돌 것이다. 문을 지날 때마다 이런 마음을 가진다면 이런 장소는 시가 된다. 이런 시적 조경을 ‘의경(意景)’이라고 한다. 교각이나 대문, 사는 집에 이름을 짓는 행위는 실제를 넘어서 시적 풍경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이런 문화가 그 지역의 정체성과 서사를 만들고 지역의 자부심과 함께 아름다움을 만든다. 유교적 이름은 사회의 윤리와 정치를 통해 사회의 도덕적 기준을 만들고, 도가적 이름은 인간이 자연과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바탕을 만든다. 이름은 ‘이르다’에서 나온 말로 어디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답게 사는 것은 이름에 담긴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름은 내가 세상에 부여된 사명이다. 요즘은 사람 사이에 이름을 부르지 않고 ‘박 대리님’ ‘김 사장님’ 등 직함을 부르고, 직함이 없는 경우 ‘이모님’ 등 애매한 호칭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은퇴 후 사회적 이름이 사라지면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사물은 이름을 통해 존재하고 존재를 통해 관계를 맺고 사고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명이나 호는 기존의 자신을 벗어나 자신을 또 다른 캐릭터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집에 이름이 있다면 단순히 내가 사는 집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의 집’이 될 수 있다.

이름을 뜻하는 ‘명(名)’은 ‘저녁 석(夕)’과 ‘입 구(口)’가 결합된 한자다. 이것을 해석하면 ‘어두운 저 어디에서 부르는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둠’은 생명의 근원으로,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명(名)인 것이다. 과거에는 ‘양진당’ ‘충효당’ 등 집에 이름을 지어 집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활 전반에 걸쳐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요즘도 법적으로 모든 상가, 빌딩, 근린생활시설은 건물명을 신청할 수 있다. 건물의 이름이 우체국 집배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이 그 건물에 새긴 마음이자 향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이상향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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