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이름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할 수 있다. “당연히 있죠!”라며 아파트 브랜드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 브랜드는 해당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의 상표일 뿐 집 이름’은 아니다. 논어에서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스승님께서 정치를 하신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대답했다. 공자는 임금이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각 사회구성원이 그 이름에 부합되게 행동하는 것이 사회의 근본이 된다고 생각했다.》
조선을 개국하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태조는 1394년 일 년간 경복궁을 건축하고 동시에 왕의 조상을 모시는 종묘, 땅과 곡식을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을 지었다. 이후 곧바로 1396년 1월 도성축조도감이라는 관청을 신설해 49일 동안 11만 명을 동원해서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부터 대학로에 있는 낙산, 목멱산(현재의 남산), 인왕산까지 연결하는 약 19km 규모의 도성을 쌓고 4대문과 4소문을 만들었다.
여기서 4대문은 통행을 위한 기능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궁궐은 나라의 중심을 상징하고 사대문은 동서남북의 방위로 국가의 영토 전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4대문의 이름을 짓는 것은 나라를 통치하는 이념을 세우는 일과 같았다. 남대문인 숭례문에 ‘예(禮)’, 동대문인 흥인지문에는 ‘인(仁)’, 서대문인 돈의문에는 ‘의(義)’, 북문인 숙정문에는 ‘지(智)’를 담은 이유다. 마지막으로 종로 한가운데는 보신각을 세워 유교의 마지막 덕목인 ‘신(信)’을 상징으로 세웠다. 정리해보면 4대문과 보신각은 다섯 가지 인간의 도리인 인의예지신을 각각의 문의 이름으로 삼고 이를 통해 백성들이 통치의 이념을 일상에서 보고 느끼도록 한 것이다.
이름을 뜻하는 ‘명(名)’은 ‘저녁 석(夕)’과 ‘입 구(口)’가 결합된 한자다. 이것을 해석하면 ‘어두운 저 어디에서 부르는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둠’은 생명의 근원으로,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명(名)인 것이다. 과거에는 ‘양진당’ ‘충효당’ 등 집에 이름을 지어 집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활 전반에 걸쳐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요즘도 법적으로 모든 상가, 빌딩, 근린생활시설은 건물명을 신청할 수 있다. 건물의 이름이 우체국 집배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이 그 건물에 새긴 마음이자 향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이상향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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