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를 할까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까지 이런 질문을 종종 받았다고 한다. 한 전 권한대행에게 조언하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서다. 이런 정치 현안 외에 자신의 임기 후 거취에 관한 질문도 심심치 않게 접한다. “차기 총리나 경제부총리를 할 생각은 없느냐”는 것이다.
이창용 독립성 발언에 '시끌시끌'
이 총재는 주변 지인들에게 항간의 소문을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은 안팎에선 “중앙은행 총재가 차기 자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 총재의 ‘광폭 행보’는 장삼이사의 이런 의혹에 불을 지폈다. 탄핵 정국 한복판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15조~20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며 추경 규모까지 ‘콕’ 집어 요청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는 헌법재판관 임명 이슈를 두고는 당시 한 권한대행을 찾아가 조언하는가 하면, 공개적으로 정부를 두둔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것뿐 아니라 정치로부터도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 총재 발언이 공개되자 한은 안팎이 시끌시끌하다는 전언이다. 한은 출신 일부 인사는 “총재가 오히려 한은을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한은 내부에서도 “여야 정치인이 앞다퉈 한은을 찾아와 총재와 사진을 찍는 건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총재는 “국가 신인도를 생각할 때 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 총재로서 침묵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이 총재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 총재 취임 후 한은이 지역 균형발전, 입시 제도, 정년 연장 등 우리 경제의 구조 개혁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가 중앙은행의 이런 문제 제기에 선입견을 갖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동안 정부와 정치 권력에 휘둘리지 않은 통화·신용정책의 전문성과 독립성 때문이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영향력은 광범위하다. 이로 인해 자본과 정치 권력으로부터 유혹과 압력을 받는다. 이런 압력을 떨쳐낼 수 있는 원동력은 결국 전문성에서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임하려 한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켜준 건 정부도 정치권도 아니라 시장이었다.
한은 직원 경쟁력 유지할 수 있나
다소 걱정스러운 대목이 여기에 있다. 이 총재의 대외 광폭 행보와 달리 한은 직원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연공 서열 중심의 공채 문화도 바뀌지 않았다. 한은에선 “글로벌 투자은행 이코노미스트와 경쟁하는 조사국 직원과 지역 본부 관리직 직원 간 연봉 차이가 별로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Fed는 다르다. 연봉은 성과 중심으로 매겨진다. 이코노미스트와 같은 전문직 연봉은 일반직과 기준 자체가 다르다. Fed 출신 인재는 학계와 월가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은이 시장에서 신뢰를 더 받으려면 이 총재에 버금가는 경쟁력 있는 직원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만큼이나 한은 조직의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때다. 국내외 금융회사가 앞다퉈 한은 출신을 영입한다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