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부검실에서 건져 올린 인간의 존엄…법의학이 남긴 삶과 죽음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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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으니 제 책에 사례로 등장하기 전에 즐기길 바랍니다.”

[책마을] 부검실에서 건져 올린 인간의 존엄…법의학이 남긴 삶과 죽음의 기록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죽은 자들은 말한다>는 벨기에 법의학자 필리프 복소(사진)가 사건 현장에서 죽은 자들의 사인을 밝혀낸 이야기를 담았다. 작은 출판사에서 조용히 나온 이 책은 마케팅 없이도 프랑스에서 장기간 논픽션 1위를 차지하며 무명의 법의학자를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려놨다.

책은 저자가 30여 년간 부검실과 범죄 현장에서 마주한 사건들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소총으로 심장을 14번 쏜 남성, 전기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사람, 시신이라 생각했지만 살아 있던 경우 등 현실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저자는 서면 인터뷰에서 책의 성공 요인에 관해 “챕터마다 짧고 읽기 쉬운 구성이 주는 친근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글이 독자에게 다가가는 힘은 진실을 드러내는 법의학을 통해 죽음을 둘러싼 두려움을 덜어준다는 점에 있다. “심리학자들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겪는 환자에게 제 책을 권하기도 합니다. 죽음에 관한 의문이 조금은 해소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들 하죠.”

다만 현실의 법의학은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CSI 같은 드라마가 대중의 기대를 키웠지만 실제 현장은 훨씬 고되고 비인간적”이라며 “30년 동안 단 네 번만이 완벽한 단서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아동 피해자의 부검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인생이 막 시작된 존재가 누군가의 폭력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는 순간, 적응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감정이 업무에 개입하지 않도록 아동 사건에는 비슷한 연령대 자녀가 있는 동료를 배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저자가 강조하는 법의학의 철학은 “시신을 열어보는 것이 곧 존중”이라는 믿음이다.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말할 기회를 주는 일입니다. 유족이 애도하는 과정에서도 ‘무엇 때문에 죽었는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전했다. “죽은 자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전에, 여러분은 삶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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