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행위 이후 구토-수치심 느껴
몸이 먼저 학살 행위 거부감 표현
◇모자이크/한성훈 지음/644쪽·3만7000원·진실의힘
6·25전쟁 영웅으로 알려졌던 김만식 일등상사는 2007년 7월 충북도청 기자회견에서 1950년 전쟁 당시 헌병대 간부로서 보도연맹원 처형에 참여했다고 털어놨다. 보도연맹 학살사건은 6·25전쟁 발발 직후 정부가 좌익 전향자 등으로 구성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처형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김만식은 이북에서 아버지가 ‘인민재판’으로 처형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월남해 군인이 된 반공주의자였다. 그러나 전쟁 영웅이란 이름 뒤에는, 학살 가담자라는 또 다른 자아가 평생 따라붙어 있었다.
최근 국제 학계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연구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떠오른 ‘가해자의 감정’에 주목한 책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한 저자는 가해자를 이해하는 일은 면죄부를 주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는지, 타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밀어내는 ‘비인간화’가 어떤 감정과 판단 속에서 작동했는지를 따져 묻는 작업에 가깝다고 봤다.
책은 6·25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제주4·3사건, 여순 사건 등 현대사의 굵직한 비극들을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비밀공작,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이 저지른 대학살, 일본군 전범 행위 등 폭넓은 사례를 다룬다.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감정은 ‘혐오’다. 가해자들은 잔혹행위 이후 수치심과 죄책감은 물론 메스꺼움과 구토 같은 신체 반응도 겪는다. 책은 이런 혐오감을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라 도덕 판단에 앞서 몸이 보내는 신호로 읽는다. 학살 현장에서 인간을 죽였던 가해자의 몸이 뒤늦게라도 그 행위를 거부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책의 목적은 가해자를 괴물로 고립시켜 단죄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인간성이 어떤 조건에서 무너지고, 폭력이 어떻게 집단의 명령과 침묵 속에서 반복되는지를 살핀다. 타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내면을 함께 들여다보는 기록이다 보니 읽는 동안 마냥 편하지는 않다. 그 불편함을 견디게 하는 힘은, 학살이 어떤 특정한 악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취약한 틈에서 벌어진다는 책의 문제의식에 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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