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美 좌파의 본산' 하버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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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4.20 17:41 수정2025.04.20 17:41 지면A35

[천자칼럼] '美 좌파의 본산' 하버드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하버드대의 충돌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시작과 함께 미 명문 대학들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연방 지원금을 무기로 대학의 진보적 색채 지우기에 나섰는데, 이제 화력이 하버드에 집중되고 있다.

하버드는 지난 14일 반유대주의 근절, 성 소수자 특혜 중단 등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한 학사 정책을 처음으로 공개 거부했다. 이에 발끈한 정부는 22억달러(약 3조1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동결하고 면세 지위 박탈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유학생, 외국 기부금 등까지 문제 삼으며 연일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SNS에 “하버드는 길을 잃었다. 증오와 어리석음만 가르치니 더 이상 지원을 받아선 안 된다”고 썼다.

하버드는 1636년 설립된 미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 미 건국보다 140년 앞선 역사를 자랑한다. 존 F 케네디, 버락 오바마 등 8명의 미 대통령을 배출한 최고 명문이다. 특히 진보 정책의 브레인 센터 역할을 맡아 ‘좌파의 본산’로 불린다. 하버드가 반기를 들자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정부 요구를 거부하고 예일·스탠퍼드대 등이 연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하버드를 굴복시키지 않고서는 대학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버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지난해 기준 530억달러(약 75조6000억원) 기금을 보유한, 미국에서 가장 돈 많은 대학이다. 그러나 면세 혜택이 박탈되면 수십억달러 손실과 함께 부유층 기부까지 줄어드는 연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이번 충돌은 단지 대학의 자율성 문제만은 아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트럼프 재집권을 “급격한 미 리버럴리즘(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라고 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 이른바 ‘문화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트럼프 압박이 과도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 대학가의 좌파적 기류가 일정 선을 넘어섰다는 비판도 적지 않아 향후 양측 갈등이 쉽게 봉합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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