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흔들리는 '특별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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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4.29 17:33 수정2026.04.29 17:33 지면A31

영국을 향한 미국의 시선은 다층적이다. 미국 독립의 기폭제가 된 저서 <상식>에서 토머스 페인은 “영국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파멸밖에 없다”며 영국을 식민지 주민을 잡아먹는 야수에 빗댔다. 하지만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 와중에도 적지 않은 미국인은 문화의 뿌리가 같고 영어라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영국인을 친밀감과 경외심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천자칼럼] 흔들리는 '특별한 관계'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끈끈해진’ 것은 강력한 적에 공동으로 맞서면서부터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1939~1945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1번 만났고 1700통의 편지와 전보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댄 기간만 120일에 이른다. 이처럼 긴밀한 양국 관계를 두고 처칠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라고 불렀다.

전후 ‘특별한 관계’라는 표현이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두 나라 사이는 각별했다. 인도양 디에고가르시아섬부터 지브롤터, 버뮤다 등 영국 식민지에 있던 군사시설은 내 것·네 것 구분이 없었다. 1963~1991년 영국은 미국 네바다 사막에서 21회나 핵폭발 실험을 했다. 미국과 영연방 국가들은 ‘파이브 아이즈’라는 최강의 정보 공유 체제도 갖췄다. 자유주의 철학을 공유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집권기엔 특별한 관계가 절정에 달했다.

미국과 영국 간 특별한 관계가 “더는 특별하지 않다”는 영국 외교관의 폭로가 나왔다. 크리스천 터너 주미 영국대사는 지난 2월 한 행사장에서 특별한 관계라는 표현을 두고 “향수에 젖어있고, 과거 지향적이며, 부담만 클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미국과 특별한 관계인 나라는 아마도 이스라엘일 것”이라는 뼈있는 말도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전쟁을 시작한 이후 줄곧 “영국의 지원이 충분치 않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문제성 발언이 전해지면서 파장이 작지 않다. 그제 찰스 3세 영국 국왕을 맞아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한 관계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했다. 외교 수사처럼 과연 특별한 관계는 계속될 수 있을까.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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