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의 자본시장 직설] 한화에어로 유상증자가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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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4월 29일 오후 5시 1분

[최석철의 자본시장 직설] 한화에어로 유상증자가 남긴 숙제

한화그룹은 글로벌 방산·우주산업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3조6000억원 유상증자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시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한화그룹의 큰 그림을 시장에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장이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 ‘왜 지금’ ‘왜 이 구조인가’를 충분하게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논란은 한국 자본시장에 수많은 물음을 던진다. 기업과 주주 사이에 신뢰란 무엇인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주주 권익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 등등. 기업과 투자자 모두 각자 입장에서 한화그룹의 초대형 증자 논란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하면서 방산·우주산업 투자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유상증자 직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에너지 등 계열사로부터 한화오션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을 소진했다는 것이 논란의 출발점이었다.

주주 불신 키운 정공법

특히 한화에너지가 오너 일가 소유 비상장사라는 점 때문에 그룹 승계를 위한 작업 아니냐는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상장을 준비 중이던 한화에너지의 가치를 부풀리려는 시도라는 의심까지 더해졌다.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모습.

서울 중구 한화그룹 본사 모습.

정치권에서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강화하는 상법·자본시장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었다. 한화그룹이 이를 의식해 다소 급하게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처음 내세운 명분은 점점 흐려졌다.

한화그룹은 빠르고 과감하게 대응했다.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이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한화 지분을 세 아들에게 증여하기로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11조원 투자 계획도 내놓았다. ‘정공법’을 택한 것이다. 유상증자 구조 역시 기존 주주배정 방식에서 일부 제3자배정으로 조정했다. 어떻게든 시장 우려를 씻어내겠다는 진정성도 느껴졌다.

달라진 주주 눈높이

하지만 이런 굵직한 의사결정이 한꺼번에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대했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주를 설득하기보단 빠르게 논란을 종식하려는 조급함이 독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업이 주주와 시장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메시지라는 지적도 있다. 충분한 설명 없이 밀어붙이듯 진행한 결과 ‘정략적’이라는 인식만 키우게 됐다. 금감원이 주주에게 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며 증자에 거듭 제동을 건 배경이다.

유상증자는 주주의 신뢰를 담보로 한 약속이다. 과거와 달리 주주들은 ‘왜 지금’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의심을 품는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 상충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더더욱 그렇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단순한 제조 회사가 아니다. 한국 방산산업의 대표주자이자 우주산업 진출이라는 도전에 앞장서는 기업이다. 그룹 차원에서도 한화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핵심 축으로 평가받는다. 초대형 유상증자 전후로 그룹 전체의 전략 방향과 각 계열사 간 자금 흐름, 승계 구조에 대한 투명하고 충분한 설명이 아쉬운 이유다.

한화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시장에서 사업 재편, 신사업 진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기업 모두 해당된다. 분명한 건 우리 소액주주 눈높이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이다. 대주주나 기관 중심으로 자본시장이 움직이던 시대는 끝났다.

요즘 우리 자본시장에선 속도보다 방향, 명분보다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 얘기다.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증자를 매듭짓기 위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마지막 한 걸음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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