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안전망: "비스마르크,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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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대표님, 솔직히 국민연금만 잘 나오면 퇴직연금은 좀 써도 되는 거 아닙니까?” 강연장에서 종종 듣는 질문입니다. 한국인에게 노후 준비의 ‘상수’는 국민연금이고, 퇴직연금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변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내 노후를 책임져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기금이 고갈되면 어떡하나”라는 불신이 공존하는 기묘한 심리 상태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씀드리자면, 국민연금 하나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설계된 적 없는 ‘불가능한 꿈’입니다. 공적 연금이라는 제도는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의 진짜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시계를 130여 년 전 독일로 돌려보아야 합니다. 1889년 베를린, 철혈 재상의 위험한 도박 19세기 말, 통일 독일 제국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로 노동자 계급이 급증하면서 사회주의 열풍이 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비스마르크에게 붉은 깃발을 든 사회주의자들은 황제와 국가를 위협하는 불온한 세력이었습니다. 무력 진압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기막힌 묘수를 떠올립니다. 적들의 주장을 훔쳐와, 국가가 먼저 실현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늙어서도 국가가 돈을 준다면, 그들은 혁명을 꿈꾸는 대신 황제에게 충성할 것이다.” 1889년, 비스마르크는 세계 최초의 공적 연금을 도입합니다. 이것은 노동자를 향한 따뜻한 사랑이나 자선이 아니었습니다. 체제를 유지하고 혁명을 막기 위해 국가가 던진 일종의 정치적 뇌물이자, 노동자를 국가 시스템 안에 묶어두기 위한 황금 목줄이었습니다. 세계은행의 경고 — “1층은 밥이고, 2층은 반찬이다” 비스마르크가 설계한 공적 연금의 본질은 명확했습니다. 국가는 은퇴자에게 해외여행을 가거나 골프를 칠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습니다. 노동 능력을 상실한 노인이 길거리에서 굶어 죽거나 사회 불만 세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딱 ‘최소한의 생존’ 비용이었습니다. 이 역할 분담을 현대적으로 정립한 것이 세계은행입니다. 1994년, 세계은행은 기념비적인 보고서 《노년의 위기(Averting the Old Age Crisis)》를 통해 전 세계에 ‘다층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권고했습니다. - 1층 (공적 연금) — 국가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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