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출신 모델, 생 로랑의 남자, 그동안 최현준을 말해주던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데블스 플랜:데스룸'(이하 '데블스 플랜2') 공개 이후 최현준에 대한 평가는 '절실한 플레이어'로 바뀌었다. 결승을 앞두고 아쉽게 탈락했지만, 최현준의 처절할 만큼 간절한 플레이는 시청자들에게 응원받았다.
'데블스 플랜2' 공개 이후 "사람들이 자꾸 응원해준다"며 웃던 그는 "게임 성적은 아쉽지만, 제 평소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며 "제 장단점을 객관화된 시선에서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면서 출연 소감을 전했다.
최현준은 카이스트 수리과학과에서 물리학 교수를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존경하던 교수님의 갑작스러운 은퇴 이후, 학문의 방향을 잃고 휴학하게 됐고 우연히 모델 일을 시작하고 한국 남자 모델 최초로 생 로랑 쇼에 오르면서 주목받았다.
카이스트 출신의 세계적인 모델의 탄생에 '데블스 플랜2' 뿐 아니라 웨이브 오리지널 '피의 게임' 시리즈에도 출연 제안을 받았다는 그는 "처음엔 2개 프로그램 모두 출연하고 싶었는데, 그건 양쪽 모두에게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며 "양자택일 상황에서 어릴 때부터 '지니어스게임', '대탈출' 같은 프로그램을 재밌게 봤고, 이 프로그램을 만든 (정종연) PD님이 연출한다는 점에 흥미가 갔다. 특히 '데블스 플랜' 시즌1을 정말 재밌게 봤었다"고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후일담을 전했다.
조용하게 주변을 살피던 최현준이 '데블스 플랜2'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감옥동의 히든 미션을 통과하면서다. 그렇지만 최현준은 "히든미션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가위바위보를 지길 바랐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서바이벌 게임이니 최대한 오래 살아남고 싶었다"며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게임에 임하면 주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을 거 같았고, 그래서 조심했는데 그 모습을 당연히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했다. 반성했다"며 자신의 플레이를 돌아봤다.
매 게임 치열하게 임했음에도 "반성한다", "잘못했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그에게 "그만 미안해하라"는 응원도 나왔다. 게임에 몰두했기에, 승리를 위해 했던 최현준의 선택과 배신을 시청자들도 공감하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왜 이렇게 반성하는 거냐"고 묻자, "감사하게도 시청자분들이 '반성할 일이 아니다'고 격려해주는 것이라 말해주는데, 수학을 오래 공부한 것에 대한 부작용이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가 직관적으로 생각한 것들을 '틀릴 수 있다'고 항상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교수님들도 항상 늘 뉘앙스로 풀면 안 되고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항상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고, 그게 습관이 됐어요. 그런데 이게 게임을 할 땐 독이 되더라고요.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시간의 제한 없이 사고하는 공부를 했던 저에겐 어려움이 많았어요."
수학을 좋아해 지금까지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익명으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부계정도 운영한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정현규가 '산수할 줄 알아?'라고 말했을 때 어땠냐?"고 묻자, "화가 나지 않았다"며 "제가 산수는 정말 못한다"면서 웃었다. 실제로 그는 감옥동에서 정현규와 생존을 걸고 대결을 펼칠 때, 산수로 패했다.
"산수 능력은 아마 저보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두 뛰어났을 거예요. 그 말이 저에게 비수가 되진 않았어요. 다만 큰 틀에서 보면 현규 형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심리적으로 압박이 됐어요. 첫 라운드부터 이어진 그런 분위기에 이미 지쳐있기도 했고요. 생활동에 제가 간 이후, 감옥동 멤버들이 한명도 오지 못했어요. 그땐 현규 형이 뭘 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압박받았어요. 평소에 헬스도 하지 않던 제가 헬스장까지 형들을 쫓아간 이유도, 그들끼리 연합을 결성할까 봐 그랬어요. 그때 현규 형이 저를 보듬어줬다면 전 그냥 넘어갔을 거 같아요. 감정이 상해서 그렇게 피스를 써가며 무리하게 플레이를 한 거죠."
최현준을 응원했던 시청자들은 그의 패배가 생활동에서 탄탄하고 끈끈해진 정현규와 송소희 연합에 밀렸다는 평가도 하고 있다. 특히 최현준이 감옥동에 갈 멤버를 고를 때 정현규나 규현이 아닌 티노를 선택하면서 "이들의 연합이 더욱 강해졌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현준은 이러한 평가에 인정하면서도 "티노 형을 선택한 건 그의 부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생활동에 계속 있었던 티노도 어느 순간 게임의 중심추가 생활동으로 기울어지는 걸 느꼈고, 본인이 감옥동으로 가서 그 연합을 희석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 것. 최현준은 "티노 형이 '내가 지금 너를 돕는 건 명분이 없으니, 날 감옥동으로 보내달라'고 했다"며 "어떻게 보면 생활동 연합을 깨려 자기 몸을 날린 건데, 그래서 살아 돌아오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세돌을 탈락시키면서 '왕따 플레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던 게임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세돌 형님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음에 두려움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세돌 형님은 저랑 비슷한 부분이 많은 분이었고, 그래서 제가 많이 안기고 좋아했다"며 "만약 티노 형이 이중실선의 숨겨진 규칙을 모든 플레이어에게 공표하지 않았다면 전 한 타임을 더 끌면서 상황을 엿봤을 거다. 이미 9명이 연합한 상황에서 제가 그걸 깨 버리는 것도 고민이 됐고, 그렇게 한 번에 죽을 줄도 몰랐다. 그래서 세돌 형님에게 너무 미안했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후 출연자들이 이세돌, 저스틴 민 등의 출연자를 왕따시켰다는 반응이 나온 것에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며 "맞다"고 했다.
"주동자는 모르지만, 모두가 공통된 마음으로 그분(이세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있어서 소외시킨 게 맞아요. 다만 저스틴은 아니었어요. 그분에게 저희가 신뢰를 잃어서 같이 못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방송이 나오기 전에도 계속 사과했어요. 그렇게 가신 게 너무 죄송했어요."
촬영 이후에도 정종연 PD를 비롯해 출연자들과 만남을 주선하고, 빈번하게 연락한다는 최현준이었다. 최현준은 "감사하게도 마음을 열어주신 건지 세돌 형님과 촬영 이후 많이 친해졌다"며 "세돌 형님이 마음이 따뜻해서 다른 플레이어 걱정도 많이 하고 계신다. 그래서 저에게 자리도 마련해 달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우승 후에도 태도 논란 등에 휩싸인 정현규를 걱정하며 "셋이 모인 자리에서 세돌 형님이 '현규 씨가 사람들에게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저는 바둑을 하면서 승자에겐 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얘기해주시더라"며 "저도 현규 형이 저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고, 촬영 이후 다신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끝나고 난 후 많이 친해졌다. 오히려 이런 반응이 나오니 뭐라고 연락을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더불어 손은유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지 않아 불거졌던 열애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며 "사귄 게 아니라 싸웠다"고 솔직하게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뒤풀이 장소로 간 중국집에서 게임 당시 서로의 기억이 달라 '억울하다'면서 목소리를 높였어요.(웃음) 그런데 방송을 보니 제가 잘못 알고 상황을 이해했던 부분도 있고 해서 이번 팬미팅을 하면서 모든 오해를 풀었어요. 이제는 모두가 친하고 행복합니다. 저도 게임을 할 땐 화도 많았고, 다 좋게 편집해주셨지만 인터뷰할 때 상대가 상처받을 수 있는 말도 하고 누군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죠. 그땐 모두 예민하고, 승부에 혈안이 돼 있고, 자기 동맹 지키기에 바빴던 거 같아요. 무섭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와서 보니 다 다른 사람 같아요."
'데블스 플랜2'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국민 '불안핑'이 된 거 같다"면서 웃었지만, 촬영을 마친 후 트라우마로 "엄마에게 '뭘 알아'라고 예민하게 굴고, 화도 냈다"고 고백했던 최현준이었다. 그런데도 "제가 생긴 게 연약해 보여서 그런지 엄청나게 측은하게 보시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며 "전 잘 지내고 있다"면서 웃었다.
촬영을 마친 후 곧바로 학교로 돌아간 최현준이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상황이지만, 그는 "저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제가 욕심을 낸다고 선택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모델 일을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요. 그저 기회가 있다면 열심히 할 뿐입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