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장 짓기 어려운 한국…반도체 도시의 이율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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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공장 짓기 어려운 한국…반도체 도시의 이율배반

“삼성 세금 없으면 도로 예산도 못 짜요.”

경기 남부의 한 지방자치단체 예산 담당자는 올해 초 예산 편성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경기 수원, 용인, 화성, 평택 등 이른바 ‘반도체 도시’는 지난 10년간 삼성전자의 지방세로 복지부터 기반시설까지 재정을 꾸려왔다.

그러나 지난해 삼성전자가 납부한 법인지방소득세는 ‘0원’. 도시는 이제 기업의 불황과 세금 공백을 함께 견뎌야 한다. 도시는 기업 덕을 봤다. 10년 넘게, 많게는 한 해 수천억원씩. 그 돈으로 도로를 깔고, 공원을 세우고, 복지사업을 펼쳤다. 기업의 실적이 곧 도시의 예산이었다. 그런데 올해 도시 곳간이 텅 비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불황 속에 실적 부진을 겪으며 법인지방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못했다. 기업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도시 재정에 전해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도시가 이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주민들은 “공장은 생겼는데 우리에게 돌아온 건 뭐냐”며 민원을 쏟아낸다.

실제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현장 인근에서는 공사장 앞 도로 착공이 수년째 지연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예산이 없어서다. 세금이 끊기자 공사도 멈췄다. 지자체 한 공무원은 “삼성 세금으로 키워온 도시인데, 이제는 그 기업이 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라며 고개를 저었다.

최근 용인 반도체 단지에 필요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관 설치가 안성시 주민 반발로 지연됐다. 용인시 관계자는 “LNG 공급관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며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LNG 공급관을 이른 시일 내에 매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인시는 안성시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우회로로 양지IC 부근을 선택했다. 고속도로와 맞닿아 있어 평소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LNG 공급관을 매설하려면 차량 통제가 필수인데, 결국 공사 차량이 일정 기간 도로를 이용하기 어렵다. 현장에선 반도체 클러스터 가동 시점이 늦춰질 것을 우려한다.

한국에서는 공장 승인 권한이 시에 있고, 심의권이 도에 있으며, 환경영향평가는 중앙부처가 한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원스톱 행정’을 앞세워 투자 유치에 속도를 낸다. 노동 규제도 장벽이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TSMC는 한국이 혹시라도 주 52시간 근로제를 완화할까 봐 경계하고 있다”며 “그 정도로 근로 유연성은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결국 기업은 예측 가능한 환경을 원한다. 그 환경이 흔들리면 투자도 철수한다. 문제는 그 기업이 떠난 자리에 남는 건 세수 공백과 주민 불만뿐이라는 점이다. 기업이 잘돼야 도시도 산다. 이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언제쯤 직시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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