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선 떠오르다]곤론마루 침몰하자 조선인 ‘귀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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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강제동원과 귀환의 길 연락선 4척 하루 최대 1.4만명 운송… 1943년 네 달간 강제동원 4.7만명 1945년 세 달간 귀국 2.3만명 달해… 배표 못구하자 웃돈 주고 어선 구입 1945년 3∼5월 미군의 폭격 피해 지역에서 조선으로 돌아간 사람은 2만3468명에 달했고, 귀환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는 내용이 ‘해협을 건넌 조선인’에 기록돼 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 제공 “부산과 일본을 오가는 연락선의 흥망이 곤론마루 침몰을 계기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장(81·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은 일본 서적 ‘관부연락선―해협을 건넌 조선인(関釜連絡船―海峡を渡った朝鮮人)’에 이 같은 변화가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다. 210쪽 분량의 이 책은 1937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 기록문학 작가 김찬정 씨가 1988년 펴냈다. 제8장 ‘관부연락선의 종언’ 가운데 182∼195쪽에는 곤론마루와 관련한 기록이 집중적으로 실렸다. 해당 부분의 번역은 1975∼1988년 일본 교토대에서 학위를 취득한 김 소장이 도왔다. 1930년대 말 부산항과 일본 시모노세키항을 오가는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려는 사람이 급증했다. 김 작가는 1937년 12월 27일 자 경성일보 기사를 인용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조선) 반도는 광기 어린 ‘여객지옥’을 빚어내고 있다. 연락선을 타려고 부산 잔교에 몰려든 사람은 24일 아침 3994명이었고, 이 가운데 500명은 배를 타지 못한 채 남겨졌다.” 관부연락선 수송량이 급증하자 일본은 선박을 추가로 투입했다. 중국 천산산맥에서 이름을 딴 ‘덴잔마루’가 1942년 9월 취항했고, 자매선인 곤론마루는 1943년 4월 운항을 시작했다. 김 작가는 “곤론마루를 비롯한 당시 연락선 4척이 최성수기에 하루 편도 1만4000명을 실어 날랐다. 시모노세키역 앞 상점가의 호황은 절정에 달했고 여객 운임도 올랐다”고 기술했다. 이어 1943년 3∼6월 곤론마루 등을 통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강제동원자도 4만7000명에 달했다고 기록했다. 김 소장은 당시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한 조선인들의 사정은 저마다 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1930년대 초반까지는 탄광이나 토목 현장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노동자가 많았지만, 가혹한 노동환경이 알려지면서 지원자가 줄었고 이후 일본 정부의 강제적인 노동자 징집 정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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