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순방서 중동 리셋 속도전
사우디서 예정에 없던 만남
제재 해제·외교 정상화 첫발
2012년 단교후 관계복원 촉각
중동 평화 조성하고 실리 챙겨
시리아서 광물협정 제안받고
사우디선 6천억弗투자 유치
중국과의 무역합의를 끝내고 4일간의 중동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의 ‘평화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며 지역 정세 ‘리셋’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리아에 대해서는 독재정권 붕괴 후 새로운 과도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고, 이란에 대해서는 핵 개발 중단과 관련한 ‘최후통첩’을 던지며 중동 지역 ‘새판 짜기’를 본격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4년간 6000억달러(약 850조원)의 투자 유치를 약속받는 경제 동반자 협정을 맺는 등 실리도 챙기며 특유의 ‘거래의 기술’을 발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순방 첫날인 13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포럼 연설에서 “시리아에 발전 기회를 주기 위해 시리아에 대한 제재 중단을 명령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아는 지난해 말 알 아사드 독재정권이 붕괴하고 아메드 알샤라 과도정부가 들어선 상태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을 겨냥해 제재를 시작했고, 과도정부 수립 이후에도 알샤라 임시 대통령이 과거 이슬람국가(IS)·알카에다와 연계돼 있다는 점을 이유로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시리아 과도정부는 독재정권 붕괴를 이유로 재제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란에 대한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던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문제 관련 협상을 언급하며 “이란 지도부가 이 올리브 가지를 거부하고 이웃 국가를 계속 공격한다면 우리는 최대의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제안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지금은 이란이 선택해야 할 때”라며 압박을 가했다.
그런가 하면 중동 지역의 ‘맹주’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독려하기도 했다. 그는 “내 바람은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에 합류하는 것”이라면서 “사우디가 함께할 때 그것은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여러분 시간에 맞춰서 진행해달라”고 강조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 합의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체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중동 지역의 역학 관계를 풀어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중동은 전쟁지역으로 변모한 상태다.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과 시리아 독재정권 붕괴,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포격 공방 등이 이어지면서 중동 지역에서는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 가운데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내걸고 있으며, 미국의 시리아 제재 해제를 돕고 있다. 이는 미국의 ‘맹방’으로 꼽히는 이스라엘의 입장과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지역의 안정을 위해 속도전을 펼치는 것은 ‘중재자’로서 대외적 위상을 보이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내 가장 큰 소망은 피스메이커(peacemaker·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자 통합자(unifier)”라면서 “미국 대통령으로서 내 우선은 항상 평화와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15일 튀르키예에서 회동할 것을 제안한 것과 관련해 “그들은 매우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등 미국 측 인사들도 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거래의 기술’을 활용해 경제적 실리도 챙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회담을 한 후 미국·사우디 간 6000억달러(약 850조원) 규모의 투자(사우디의 대미 투자)·수출(미국의 대사우디 수출)·안보협력 강화 등 내용을 담은 ‘전략적 경제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백악관은 관련 보도자료에서 미국 12개 방산기업이 사우디와 1420억달러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장비 판매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와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며 반대급부로 대규모 투자 유치와 수출계약을 맺으며 ‘거래’를 성사시킨 셈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맞춰 미국 기업들의 중동 사업 확장 소식이 연이어 공개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사우디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사우디 국부펀드 소유 기업인 휴메인에 최신 인공지능(AI) 칩을 공급하기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GB300 블랙웰 1만8000개를 시작으로 향후 5년간 수십만 개의 첨단 칩을 공급할 예정이다.
AMD는 휴메인과 ‘사우디에서 미국에 이르는’ 지역에서 AI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휴메인은 AMD와 손잡고 향후 5년간 AI 인프라 부문에 100억달러(약 14조원)를 쓸 예정이다.
아마존은 휴메인과 함께 사우디의 ‘AI 존’ 건설에 50억달러(약 7조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이날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사우디 내 스타링크 일부 사용 허가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스타링크는 사우디 내 항공기나 선박에 위성 인터넷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