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달러패권 스스로 놓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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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달러패권 스스로 놓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백악관에서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상대방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라는 문구가 적힌 패널을 들고 약 50분간 연설했다. 무역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한다는 관세 밑에는 보험사 약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맨눈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백악관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원본 이미지를 보고서야 그것이 ‘환율 조작 및 무역장벽 포함’인 줄 알았다.

상호관세 아니라 보복관세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에 관세를 50% 부과하고 있고 미국은 그 절반인 25%를 한국에 상호관세로 부과한다는 취지의 표를 들고 열변을 토했지만 50%라는 수치의 근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셜미디어에서 그 수치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수입액으로 나눈 비율이라는 추정이 제기됐고, 이는 곧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인됐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공개한 수식엔 수요의 가격탄력성(4)과 관세의 수입 가격 전가율(0.25)을 곱하도록 했지만 결국 둘을 곱하면 1이 되기 때문에 ‘수입액÷무역액’이란 산식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상호관세가 아니다. ‘무역적자 관세’라든가 ‘보복관세’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차라리 솔직했을 것이다. USTR의 설명은 더욱 기가 찬다. “지속적인 무역 적자는 관세 및 비관세 요인들의 조합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가정에 기반”해서 이같이 계산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 없이 이 문장을 쓸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 주장은 최근 화제가 된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의 보고서와도 괴리가 있다. 적어도 미란 보고서는 미국 무역 적자의 원인을 기축통화국인 미국 달러의 구조적 강세에서 찾았다.

무역 적자가 상대국의 무역장벽 때문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은 엄청난 왜곡이다.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다른 나라들이 미 달러를 확보할 필요가 없었더라면, 그래서 미국에 상품의 형태로 그 대가(달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무역 적자는 이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다. 즉 미국은 그동안 상품교역에서 적자를 본 대신 생산한 것 이상의 풍요를 누렸다.

글로벌 리더십 자격 의문

지금 그 체제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해선 인정해야 다른 나라들도 ‘같이 새판을 짜보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들고 흔든 패널에는 상대를 설득하고자 하는 의지, 최소한의 논리를 갖춰보려는 의지가 안 보였다. 최근 시장의 폭락은 자유무역의 종언에 따르는 불확실성과 함께 트럼프 정부 4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이 이 같은 ‘논리 부재’에 지배될 수 있다는 공포를 반영하는 것이다.

관세장벽 뒤로 물러난 미국은 장기적으로 기축통화국의 지위 일부를 스스로 중국과 유럽 등에 넘기게 될 수도 있다. 기축통화국의 지위와 제조업 부활을 동시에 추구하는 미란 보고서는 동맹에 비용을 분담시킴으로써 체제의 수명을 연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이 들고나온 논리는 창피한 수준이다. 아무리 미국이 당근(안보)과 채찍(관세)이 있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로는 그 어떤 정치인과 관료도 거대한 비용 분담을 자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없다. 지지자만 바라보는 게 리더십이 아니다. 진짜 리더십은 자신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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