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전쟁 이슈가 세계를 뒤덮고 있는 와중에 중국에선 세계 최초 이벤트가 잇따랐다. 무역 갈등을 넘어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의식이라도 한 듯 중국은 첨단 기술산업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이슈를 쏟아냈다.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이 대표적이다. 단순한 눈요기로 치부하기엔 로봇 관절, 제어 알고리즘의 안정성, 배터리 관리, 구조 설계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초고난도 테스트였다. 뒤이어 열린 상하이 모터쇼는 말 그대로 중국 업체의 ‘배터리 쇼’였다. 숨겨놓은 신기술을 대거 공개하며 경쟁국을 압도했다. 중국 CATL은 5분 충전으로 520㎞ 주행이 가능한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내놨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는 대형 트럭도 15분이면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를 출시했다.
'메이드 바이 차이나' 자부심
중국에선 더 이상 ‘메이드 인 차이나’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중국 기업이 생산했다는 뜻의 ‘메이드 바이 차이나’를 선호한다. 전기차, 휴머노이드 로봇,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산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전제로 한 화법이다. 미국의 거센 관세 폭격과 외교 압박에도 중국이 ‘배짱’을 부리며 협상 주도권을 잃지 않는 데는 이 같은 자립자강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흔히 중국의 과학 굴기를 폄훼할 때 톱다운 방식의 정부 주도 산업 재편과 14억 명 인구의 인해전술을 꼽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중요한 게 빠졌다. 베이징에 부임한 뒤 관료, 빅테크 관계자, 기업인, 유학생을 만날 때마다 늘상 던진 질문이 있다. “과학 굴기의 원동력은 뭡니까.” 온갖 분석이 난무하지만 결론은 매번 같았다. 교육 그리고 돈.
후발 주자인 중국은 선진국을 따라만 해선 ‘기술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없다고 일찌감치 판단했다. 돌파구로 삼은 게 인재를 통한 혁신이었다. 고급 인재 양성을 위해 해외 우수 인력을 적극 유치하고 국제 기준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10년 단위 교육 로드맵을 마련해 AI 등 특정 분야의 인재 양성에 집중했다.
대학 교육도 확 바꿨다. 문과 신입생 비중을 과감하게 낮추고 AI 복합 인재 양성을 위해 학제까지 손질했다. 이런 노력은 세계 AI 특허의 60%, 세계 체화 지능 로봇의 70% 장악이라는 성적표로 이어졌다.
'한국판 천재' 키워내려면
이렇게 양성된 인재는 파격적인 대우를 누렸다. 전문성만 인정받으면 수십억원에 달하는 연구비와 생활비·자녀 교육 특례 등 패키지 수혜가 주어졌다. 화웨이 등 기업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연봉으로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다. 내로라하는 중국 수재들이 굳이 의대를 고집하지 않는 이유다. 더 많은 돈을 받으며 더 좋은 대우를 받는데 마다할 리 없다.
“중국을 떠날 이유가 없어요.” 베이징대에서 AI 반도체를 전공하는 한국인 유학생의 말이다. 유능한 교수에, 자극이 되는 동료 그리고 부족함 없는 재정 지원. 뭣 하나 한국으로 돌아갈 유인이 되지 못한단 얘기다.
한국에선 대선을 앞두고 유력 주자들이 AI 강국을 화두로 꺼내 들고 있다. 보여주기식 AI 펀드나 즉흥적인 공약은 또다시 다람쥐 쳇바퀴만 돌릴 일이다. 미국처럼 천문학적인 민간 자금도 없고 중국처럼 인해전술도 불가능한 한국이 기댈 건 인재뿐이다. 당장 트럼프발 관세 협상보다 더 중요한 게 ‘한국판 천재’를 키워내는 일일지도 모른다.